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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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 전부터 소문이 많은 소설은 기대가 크기 마련이다. 작가들의 트위터에서도 거론되고 언론에서도 많이 다룬 최제훈의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이 그 경우다. 기묘함과 오싹한 기운까지 전해지는 표지에 자연스레 눈이 간다. 표제작을 포함한 8편의 단편은 모두 표지처럼 독특하다.   

 <퀴르발 남작의 성>은 동명의 소설과 영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재조명한다. 원작 소설이 출판된 1932년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을 시작으로 1953년 만들어진 영화에 대한 반응들, 2004년 리메이크 되는 과정, 2006년 두 영화를 비교한 어느 블로거의 글까지 각기 다른 관점에서 비틀고 있다. 하나의 대상을 놓고 벌이는 그들의 이야기는 토론이나 마찬가지다. 작가 최제훈에 의해 <퀴르발 남작의 성>은 새롭게 부활한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릴 것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도 뽀족한 고딕 양식의 성에 살고 있는 잔인한 살인마를 상상하기에 이른다. 

 셜롬 홈즈과 코난 도일의 두뇌 싸움이 흥미로운 <셜롬 홈즈의 사건>과 <프랑켄슈타인>를 다룬 <괴물을 위한 변명>도 같은 부류라 하겠다. 소설 프랑켄슈타인를 소재로 쓴 <괴물을 위한 변명>은  특히 재미있다.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의 입장에서 다루었다. 화자와 작가 메리 셀리의 가상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 휘뚜루마뚜르 세계사1>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기고문 형태로 쓴 마녀에 대한 이야기다. 마녀의 탄생과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마녀의 위치와 상징적 의미에 대해 말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뽀족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휘두르는 수 많은 마녀들에 둘러쌓인 착각에 빠져든다. 마녀사냥이라 불리는 역사적 사건과 마녀의 활약상을 신화나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마녀들을 인터뷰하며 분석한다. 가령, 이렇다. 

 저는 직접적인 피해자예요. 저 큰 매무리코 때문에 눈 밑으로 피부 처진 것 좀 보세요. 종일 인상 쓰고 있느라 주름살도 장난 아니게 늘었고, 이 우스꽝스러운 분장에 매일 세 시간을 허비한답니다. 이 꼴을 하고는 남이 신던 구두 하나 뺏으려고 깡통, 허수아비 같은 애들하고 옥신각신하고 있으니, 우습죠?  - 서쪽마녀 (『오즈의 마법사』에 107년 째 출연 중) p. 188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모습을 받아들지 못하고 부정하며 사는 여자의 이야기 <그녀의 매듭>, 다중 인격자로 살인을 저지르는 남자의 삶을 다룬 <그림자 박제>,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대리만족을 하며 살아가는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는 앞서 다룬 소설들과는 다르지만 주인공들은 사실과 상상을 오가는 사람들이다. 지우고 싶은 기억들(상처, 트라우마)은 언제든지 되살아 지배하고 조정한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인간,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이 낳은 환상은 애처롭다. 내 안에 잠재된 엉킨 실타래 같은 의식들 말이다. 인간이 가진 외형적인 모습은 얼마가 진실일까.  

 가장 압권은 에필로그격인 마지막 단편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다. 이 단편은 작가 최제훈의 기발함이 돋보인다. 차례로 수록된 단편의 인물들이 모두 등장한다. 소설 전체를 토론하며 자기 주장을 펼친다. 그들은 마치 최제훈의 소설을 읽은 독자가 던지는 질문을 대신하는 듯하다. 여하튼 흥미로운 소설이다. 앞으로 최제훈이 어떤 소설을 써나갈지 모르지만 이번 소설로 주목받은 건 분명하다.    

 최제훈은 기존의 영화나 책에서 소재를 얻어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했다.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는 부서졌고 조각났다. 조각난 부분은 새롭게 조합되고 이전의 이야기는 사라진다. 어떤 단편은 소설이 아닌 논문처럼 여겨진다.그의 소설은 동화나 신화를 소재로 한 오현종의 『사과의 맛』, 어른들의 위한 동화 존 코널리의 『잃어버린 것들의 책』,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패러디한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거울아 거울아』가 떠올리기도 했다. 

 어찌보면 괴물이나 마녀같은 이야기들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 더 어울리는 주제가 아닐까 한다. 인터넷 통신과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얼굴없는 폭력들, 심각한 인간성 상실, 끊이지 않는 극악무도한 범죄들, 개인주의가 만연한 우리 모습이 소설 속에 있었다.

 인간의 광기는 언제든지 또 폭발할 수 있다. 중세 말의 그때처럼 명분도 없는 전쟁이 빈발할 때, 원인 모를 질병과 자연재해가 덮칠 때, 사회가 불안하고 시기와 차별이 만연할 때, 그들은 또다시 희생양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처음보다 두 번째가 쉬운 법.  제 2의 마녀사냥이 시작된다면, 이번 사냥감은 그들이 길들여놓은 진짜 마녀, 바로 우리가 될 것이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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