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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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타 뮐러의 소설은 어렵다. 읽는 것도 어렵고 읽고 나서 책에 대해 말하는 건 더 어렵다. 그러나, 감히 나는 말하고 싶다. 헤르타 뮐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이라고 말이다. ‘숨그네’와 마찬가지로 ‘마음짐승’은 그녀만의 언어다. 그것은 독재치하의 시대를 산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가 부모 세대의 시선으로 독재를 경험하고 바라 보았다면 <마음짐승>은 자녀 세대인 청춘의 눈으로 바라본 글이라 하겠다. 차우세스쿠의 독재자 시절 루마니아의 상황은 같지만 <마음짐승>은 분명, 젊은 소설이다.  공포와 불안의 시대를 살아내며 분노하고 투쟁하는 젊은 이의 이야기였다. 

 소설은 대학생 롤라의 자살로 시작한다. 헤르타 뮐러가 네모라 명명한 기숙사에서 옷장에 허리띠로 목을 매고 자살했다. 일주일 전에 당원이 된 롤라는 왜 자살을 했을까. ‘다만, 이 여학생은 자살했다. 우리는 그녀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며, 그녀를 경멸한다. 이는 국가적 수치다.’ p.35 그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한 사람의 죽음을 국가적 수치라 말하는 사회, 숨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는 세상일까.

 죽은 롤라와 같은 방을 쓰던 주인공은 롤라가 남긴 노트에서 체육 강사에게 강간을 당했음을 알게 된다. 롤라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와 만나 매일 매일 시대를 논한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정치를 비판한다. 동시에 그들은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는다. 경감 프옐레는 네 사람의 방을 수색하고 심문한다. 가족이 있는 시골 집까지 수색이 이뤄지고 그들이 가는 어디에나 눈과 귀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감시는 계속된다. 

 공장에서 번역사로 일하는 주인공은 다른 도시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편지로 소식을 전한다. 감시와 검열이 철저했던 시절, 그들은 머리카락을 한 올 넣는 걸 잊지 않는다. 심문은 손톱가위, 수색은 신발, 미행은 감기 걸렸다는 암호로 가득한 편지로 서로를 위로해야 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친구들뿐이었다.  동료라 믿었던 테레사도 경찰의 심부름꾼이었다. 과거 장발 단속이나, 금지곡, 통행금지를 떠올리면서도 나는 이런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머리속에 풀이 자란다. 말을 하면 풀이 잘린다. 침묵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제멋대로 두번째, 세번째 풀이 계속 자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운이 좋다.’ p. 8 이 문장을 읽었을 때, 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침묵할 수 밖에 없었으니, 풀이 자랄 수 없었다. 침묵을 강요받는 시대, 주인공의 할머니가 미쳐서 노래하는 건 당연했다. 공장에서 쫓겨난 주인공은 풀이 자랄 수 있는 곳으로 망명한다. 헤르타 뮐러가 그 시대를 겪은 때문일까.<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나 <숨그네>보다 <마음짐승>은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치욕적인 심문을 견디고 루마니아를 떠나 함께 떠나지 못하고 죽음으로 남은 친구들을 애도한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는 그 시절을 기록하여 세상에 알려야 하는 의무를 묵묵히 수행한다. 살아남은 고통을 그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저 그네들이 함께 읊었던 시를 읊으며  제멋대로 계속 자란 풀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는 황홀한 상상에 빠져든다.

구름 한 점마다 친구가 들어 있네
공포로 가득한 세상에서 친구란 그런 거지
어머니도 원래 그런 거라 하셨네
친구야 아무렴 어떠니
진지한 일에나 마음을 쓰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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