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원의 붉은 열매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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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문장에 빠져들 때가 있다. 탄탄한 구성으로 잘 엮여진 줄거리가 아니라 강렬한 문장 하나 가슴에 박혀 버릴 때가 있다. [분홍 리본의 시절]로 처음 만난 권여선의 문장이 그러했다. 정곡을 찌르는 섬세하고 날카로운 문장은 소설의 내용을 돋보이게 하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 [내 정원의 붉은 열매]역시 아름답고 견고한 문장의 연속이었다.  

 <빈 찻잔 놓기>는 서울을 테마로 한 소설집을 통해 먼저 만났다. 서울이라는 공간을 염두해 두고  읽은 터라 그런지, 당시에는 인간의 욕망과 탐욕에 대한 느낌이 강했다. 그러한데 이번엔 서울은 사라지고 사람과 사람만이 보였다. 일로 엮인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감정들이 누군가의 의도대로 흘러갈 수도 있다니. 성공을 위해, 진심을 이용하는 잔인함이 인간의 본성일까.  

 ‘누군가 그대 앞에 찻잔이든 술잔이든 빈 잔을 내려놓는다면 경계하라. 그것이 처음에는 온화하고 예의바른 권유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이 그대에게 가장 잔인하고 난폭한 지배로 돌변할 수도 있으니. 애당초 빈 잔에는 이런 무시무시한 의도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p.14

 상대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다. 세상의 이치를 모두 아는 듯한 권여선은 이런 진부하지만 눈부신 문장도 썼다. ‘사랑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다.’ p.46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누구나 사랑을 잃었던 시절로 돌아간다. 산다는 게 사치처럼 느껴지던 때, 고아가 된 듯한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사랑을 믿다’ 란 제목처럼 주인공이 들려주는 연애 이야기다. 실연을 한 그에게 그녀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회상한다. 사랑이 끝난 후에 사랑을 믿었던 순간을 이야기하기에, 현재는 사랑을 믿을 수 없다. 처음부터 연인인 관계는 없다. 친구이거나, 동료이거나. 그와 그녀도 그랬다.  일방적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그녀가 그와의 관계를 사랑이라 명했어도 그는 친구일 뿐.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정리된 감정을 통해 과거의 관계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표제작인 <내 정원의 붉은 열매>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친구와 만나 대학시절 함께 공부했던 선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지나간 날들,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타인이 기억하는 모습은 다르다. 그리하여, 오해가 생기고 서로 어긋나기도 한다. 술에 취한 듯 내뱉은 고백이 상대에게는 감정의 소비처럼 여겨졌을지 모른다. 그것이 진심이었다면, 진심이었음을 알았더라면 오랜 시간 서로를 미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처럼 한 번 잘못된 관계를 바로잡기란 너무 어려운 것이다.

 ‘찻잔이나 술잔, 밥공기 같은 것이 결코 화분이 될 수 없던 시절에도, 한쪽 모서리가 기운 사다리꼴의 그 방은 내게 충분히 훌륭한 화분이었다. 한때 나는 시루 속 콩나물처럼 동료들과 함께 그 방에서 쑥쑥 자라났다. 나와 동료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함을 느낄 때마가 나는 미칠 듯이 괴로웠다. 그 당시의 나는 젊기 때문에 차이를 못 견딘다는 걸 알지 못했다. 젊기 때문에 차이를 과장하고 젊기 때문에 차이에 민감하다는 것을 몰랐다. 조사 하나, 어휘 하나에도  이고 살아야 할 하늘을 가르던 시절이었다.’ p.117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있다. 젊다고 자부하던 그 때, 내 어설픈 행동만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을 터. 권여선의 문장이 위로로 다가오는 건 나뿐일까.  말이 길어지는 소설이다. <분홍 리본의 시절>에서의 칼 날 같은 날 선 느낌이 다소 누그러진 듯하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3년이라는 시간 때문인지 모른다. 나 역시도 어떤 관계와 감정에 있어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실수로, 누군가의 진심을 알지 못한 무심함으로 무너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소설은 선택할 수 있는 관계와 선택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해 말한다. 후자는 존재와 동시에 맺어진 관계 말이다. 혈연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나아가 가족의 관계가 될 것이다. 홀 어머니와의 아픈 기억을 담고 사는 남자의 삶을 다룬 <당신은 손에 잡힐 듯>, 한 가족의 탄생 이야기인 <K가의 사람들>, 잘못된 관계로 시작된 가족이 대물림되는 <그대 안의 불우>은 모두 가족을 다루었다. 소설 어디에도 단란한 가족 관계는 없다. 부모는 서로를 증오하거나 무시한다.

<그대 안의 불우>에서 프로게이머였던 그와 그녀는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녀는 부모에게 결핍된 애정을 보상받고자 했기에 모든 유닛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를 선택한다.  ‘모든 유닛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를 알고 그들에게 살 길을 마련해주는 것,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게 해주어야할 바로 그것을 해주는 것, 그뿐이었다.’ p.228 아버지를 경멸한 어머니를 닮은 그는 그녀를 무시하고 그녀 역시 아이를 유산하며 생성된 관계를 소멸시킨다. 버릇이나 습관처럼 관계마저 닮게 된다.

 누군가 재미에 대해 의문을 품을지 모르니 밝혀두자면,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제 3자의 입장에서 관망하듯 그려낸 <k가의 사람들>, 예술인 마을에 여류시인이라 불리던 여자에 대한 갈망과 질투를 다룬 <웬 아이가 보았네>는 특히 그렇다.과거 회상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현재에 이르러 어떤 결말을 맺는지 궁금증을 불러온다. 

 7편은 모두 빛났고, 틈이 보이지 않았다. 몇 편의 소설은 연애소설같기도 했고, 몇 편은 가족소설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은 애정과 애증의 관계에 대한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고백하지 못했던 사랑에 대해, 불편하게 지속되는 관계에 대해, 무한의 애정을 주지 못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관계와 관계로 이어진 거대한 삶, 나로 시작되는 관계와 나를 통해 맺어지는 관계속에 살고 있는 나를 본다.  [내 정원의 붉은 열매]를 만나는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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