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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들
김중혁 지음 / 창비 / 2010년 9월
평점 :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인정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질병으로 인한 예견된 죽음일지라도 남겨진 자의 슬픔은 고여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설령 죽은 자가 귀신이 되어서, 좀비가 되어서 찾아온다 해도 두려움은 사라지고 반가움이 가득할 맞이할 것이다.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간절함이 귀신이나 좀비의 존재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김중혁은 이런 간절함을 알았던 걸까. <좀비들>이란 제목에서 나는 어떤 괴기스러운 괴물과 공포만을 떠올렸지 간절함과 애틋함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눈을 가졌기에 죽은 자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나 보다. 그렇다. <좀비들>은 죽은 자들의 이야기였고 그들을 그리워하는 살아있는 자들의 이야기였다.
안테나 감식반 일을 하고 있는 주인공 지훈은 형의 죽음으로 무의미한 일상을 살고 있다. 형이 남긴 음반 '스톤 플라워' 때문에 도서관에서 일하는 뚱보 130과 번역가 홍혜정을 만난다. 홍혜정이 살고 있는 고리오 마을은 안테나 감도가 0으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마을이었다. 지훈은 고리오 마을에서 정착하면서 홍혜정의 갑작스런 죽음과 그녀의 딸 홍이안을 알게 되고 이상한 일들과 마주한다. 그것은 살아있는 시체인 좀비들의 공격을 받는 것이다. 좀비는 어디서 나타났을까. 고리오 마을은 군대의 통제하에 고립되고 좀비를 죽이려는 군대와 좀비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게 된다.
좀비의 존재에 대한 추리가 시작되면서 고리오 마을의 역사도 밝혀진다. 죽은 자식의 시체를 팔아 좀비로 만들었지만 군인들의 총에 다시 죽게 할 수 없었다. 해서, 그들은 좀비의 곁에 살게 되었다. 죽은 자나 다름없는 좀비를 죽이는 훈련을 통해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군인들과 좀비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은 대립한다. 고리오 마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좀비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불쌍하고 아련한 존재에 불과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났지만, 육체도 영혼도 사라진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존재.
김중혁은 세심한 관찰력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과 사라진 것에 대한 이야기를 멋지게 풀어내는 능력을 가진 작가라 생각한다. 몇 편의 단편에서 만난 그의 상상력은 신선했고 기발했다. 많은 호평을 받은 <악기들의 도서관>과 <펭귄뉴스>를 뒤로하고 만난<좀비들>은 강력한 무언가가 빠져 있는 듯하다. 감성적이고 따뜻한 상상력은 확장되었으나 알맹이는 빼 놓고 길게 늘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좀비라는 소재는 좀비들의 공격에 맞서 결국은 인간이 승리하고 마는 판타지나 SF에 적합하다. 그러나 김중혁의 <좀비들은>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시키는 고리였다. 명확하게 말하면 죽은 자를 떠나 보내지 못하는 비통함이었다. 아니, 삶이 진행되는 동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라는 것이었다. 지훈이 형과 더 긴밀한 관계를, 홍혜정과 홍이안이 홍현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었다면 분명 그들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도미노가 다음 도미노를 넘어뜨리듯 모든 사건은 연결돼 있었다. 처음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처음이란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마지막 도미노는 무엇일까. 마지막 도미노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의 도미노를 쓰러뜨리는 사건이 될 것이다. (...) 세상의 모든 일에 처음과 끝이 있다는 게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처음과 끝은 중요한게 아닐지도 몰랐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이고, 지금의 이 사건은 또다른 사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의 도미노로서 이곳에 서 있을 뿐이다. p. 375~376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이고, 지금의 이 사건은 또다른 사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란 문장처럼 지금의 자리와 지금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