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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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타 뮐러는 <숨그네>에서 고통과 슬픔을 담담하고 아름답게 그렸다. 때문에, 슬픔이 더 크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무척 어렵게 읽은 탓도 있겠지만,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해서, 두려움을 안고 다시 그녀의 글을 만났다. <숨그네>에 비하면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얇은 책이었지만, 역시나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책을 펼치자 마자 마주한 문장은 이렇다. ‘전몰자 기념비 주변에 장미가 피어 있다. 장미는 우거진 덤불. 아주 무성하게 자라나 풀들의 숨통을 틀어막는다. 종이처럼 돌돌 말린 작고 흰 꽃을 피운다. 꽃들이 바스락거린다. 동이 튼다. 곧 날이 환해질 것이다.’ p 11  아, 어쩌란 말인가. 나는 숨을 죽인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헤르타 뮐러의 글은 이처럼 강렬하고 황홀하다. 그리하여, 그 황홀함 속에 숨겨진 슬픔과 절망을 때로 잊게 한다. 

 소설은 루마니아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 독일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빈디시 가족을 중심으로 모피가공사, 목수, 재단사, 야간 경비원, 통장이, 늙고 힘 없는 노인들의 삶을 보여준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빈디시, 그의 아내 카타리나는 전쟁의 참혹함을 견내냈지만 서로의 상처를 할퀴며 지낸다. 그랬기에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의 떠남은 간절했는지 모른다. 

  빈디시는 루마니아를 떠나기로 결정한 날부터 방앗간으로 출근 할 때 날짜를 헤아린다. 헤아린 날짜가 많아질수록 절망감은 커져간다. 밀가루를 시작으로 온갖 뇌물을 받치지만, 권력을 가진 경찰과 신부가 원하는 것은 끔찍했다. 도시에서 유치원 교사를 하는 딸, 아멜리에를 원했다. 가장인 빈디시는 자신의 무력함에 고뇌하지만, 러시아에서 몸을 팔며 살아남은 아내 카타리나는 다르다. 루마니아를 떠나야만 살 수 있기에, 생존은 죽음보다 위대하기에 어떻게든 여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멜리에의 희생으로 여권을 얻는 비참한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비겁한 삶은 얼마나 가혹한가. 

시대적인 배경으로 보면 수용소의 생활를 다룬 <숨그네>의 뒷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고통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독재 치하에 살고 있는 그들의 삶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누리는 생활이 아니었다. 일상을 함께 나누던 이웃과 친구를 믿을 수 없는 공포가 가득한 시절이었다. 

 헤르타 뮐러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죽음, 이별, 기다림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인간답게 살고자 자유를 위해 떠난 사람들, 떠나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 죽음으로 남겨진 사람들의 치열한 하루 하루를 너무도 고즈넉하게 담아냈다. 짧고 강렬한 문장으로 이뤄진 소설은 하나의 거대한 산문시라 할 수 있다.  루마니아에서 독일로 이주한 헤르타 뮐러의 경험이 더해졌기에 생생한 풍경의 묘사와 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헤르타 뮐러만이 쓸 수 있는 고요한 글은 그 어떤 화려한 글보다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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