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걸
페터 회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선천적 장애나 후천적 장애로 인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소리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하여, 일반적으로 그 소리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지 않는다. 물론 그 소리가 소음인 경우는 다르지만 말이다. 때로 목소리를 통해 상대의 심리를 짐작하기도 한다. 불안한 경우엔 목소리는 떨리고, 흥분한 경우엔 자신도 모르게 커지기도 한다. 비가 내리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경쾌한 하이힐 소리, 피아노 연주 소리처럼 세상엔 얼마나 많은 소리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소리를 듣는 일과 고유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건 정말 신비하고 오묘한 일이다. 그런 소리를 남다른 재능으로 내면의 감정까지 읽을 수 있다면, 과연 행복할까? 
 
<콰이어트 걸>은 천부적인 청각의 소유자로, 놀라운 재능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페터 회를 기억한다면, 분명 설레일 것이다.  주인공 카스퍼는 유명한 서커스 광대로, 작은 벌레의 움직임, 전화선 너머 누군가가 어떤 마음까지 소리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카스퍼에게 어느 날 여자와 남자가 클라라마리아란 소녀를 데리고 온다. 소녀는 자신이 유괴되었다고 말하며 영수증을 건네준다. 영수증 뒤에는 소녀가 그린 그림이 있었고 두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운명의 끌림이었을까. 카스퍼는 클라라마리아를 찿아 나선다. 소녀를 구해줄 카드는 영수증이 전부였다. 

 영수증의 전화번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추리가 시작된다. 그 과정에 만나는 많은 사람과 그 사람들의 소리를 통해 카스퍼는 놀라운 사실과 마주한다. 클라라마리아도 자신과 같이 소리에 대한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어, 멀리 않아 지진이 일어날 꺼라는 것과 그 사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스퍼가 사랑했던, 자신을 떠난 여자, 스티나가 그 중심에 있었다. 

 “모든 사람의 심장에서는 소리가 나죠. 그 소리에는 근사한 울림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린 그 기를 꺾어버리죠. 지금 여러분 모두의 소리는 정말 훌륭해요. (...) 여러분이 매일 10분만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면. 그리고 긴장을 풀면, 그 파동이 계속해서 퍼질 겁니다. 정말이지, 여러분에게선 바흐와 같은 소리가 날 겁니다.” p291

 모호하며 몽환적인 분위기, 소리로 만나는 과거와 현재, 카스퍼가 찾는 사람들과 그를 쫓는 사람들의 소리를 상상하게 한다. 소설엔 내내 음악이 흐른다. 카스퍼가 좋아하는 바흐의 선율이 함께한다. 하여, 독자는 카스퍼처럼 바흐를 듣고, 그 소리에 색과 형상을 입힌다. 여타의 추리소설과는 확연하게 다른 소설이다. 소설은 무척 난해했다. 인물의 관계는 복잡했고, 현재와 과거 회상의 구성과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공간도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스티나는 왜 떠났을까. 카스퍼는 소녀를 구할 수 있을까. 안개처럼 음악이 깔린 세계로 독자는 깊이 들어간다. 

  ‘사랑은 상대를 알아보는 것이다. 미지의 것에 매료되고 끌릴 수는 있지만, 사랑은 신뢰 속에서 천천히 자라나는 것이다. 해변에서 처음 스티나를 봤을 때부터 그는 신뢰와 믿음의 소리를 반복적으로 들었다. 지금도 그 신뢰와 믿음은 존재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지금처럼 뭔가 다른 것, 마치 미지의 대륙처럼 낯설고 정복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았다.’ p 514

 누가 이렇게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 카스퍼에게 그 소리는 아마도 바흐가 아닐까. 아, 소리로 느끼고 기억되는 사랑이라니. 음악이 흐르는 추리소설이라 말할 것인가, 소리로 그려낸 사랑이라 할 것인가. 그건,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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