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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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의 소설에 매료되어 그 작가의 전작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김연수도 내게 그런 소망을 갖게 한 작가 중의 하나다. 그는 인기 작가다. 솔직한 내 생각을 말하자면, 소설가로의 모습보다 인간 김연수의 인기가 더 많지 않나 싶다. 그의 소설은 때로 어렵고, 때로 방대하여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내가  읽은 장편들을 대체로 그러했다.  

 글을 쓰는 모든 작가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생각일 수 있으나, 특히 김연수의 소설은 김연수 개인에서 시작하여 우리로 끝나는 느낌을 준다. 김연수의 사적인 이야기일 것 같은 <세계의 끝 여자친구>라는 제목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처럼 낡은 사진 한장으로도 나와 당신은 우주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이야기를 만든 그였다. 하여, 김연수는 소설이라는 매개를 통해 닫혀있는 나와  타자의 문이 열리기를 바라지 않나 생각한다.

 한국에 온 미국 출신의 여류 소설가, 나와 통역을 맡은 여자, 혜미의 짧은 만남을 다룬 <케이 케이를 불러봤어>는  다른 언어를 쓰는 인물들이 언어로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혜미해피로, 밤에밤뫼로 다르게 이해되지만, 나와 혜미에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공허한 슬픔이 같았다. 나에게 ‘케이케이’라 불렸던 남자친구의 죽음, 혜미에겐 아이의 죽음. 이로 둘은 자연스레 서로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다소 엉뚱하게 시작된 일들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를 만들기도 하니 조심하라는 경고와도 같은 두 단편.  <내겐 휴가가 필요해>, <웃는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레스> 도 결국은 소통에 관한 문제였다. <내겐 휴가가 필요해>의 도서관 사서는 단지 피곤하여 휴가를 원했던 것 뿐이며, 과거 자신이 행했던 일로 괴로워하는 남자의 대화는 전혀 다른 의도로 이해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상대방의 입장이 아닌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오해하며 서운해한다. 그리하여, 나를 드러내려 더 웃고, 더 울고, 더 화를 내며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수많은 첫 문장들. 그 첫 문장들은 평생에 걸쳐서 고쳐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서. <중략> 그로부터 인생은, 쉬지 않고 바뀌게 된다.  우리가 완벽하게 어둠으로 들어가지 전까지 이야기는 계속 고쳐질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첫 문장은 달라질 것이다. 그는 어둠 속 첫 문장들 속으로 걸어갔다. p 227~228
 
 김연수가 첫 문장이라 표현한 것은 우리의 삶은 아닐까. 지웠다,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문장들처럼 우리의 삶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이 아닌 타인의 세상에 대해 알고 싶고 경험하고 싶었던  소녀의 감정 변화를 잘 그려낸 <기억할 만한 지나침>과 지금의 나로 유지되는 삶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슬픈 진실을 생각하게 한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는 묘한 여운이 남았다. 

 그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 쉽게 절망하지 않을 것, 그게 핵심이다. 이 말이 내겐 사랑으로 대표되는 인생의 모든 일들은 노력으로 완성된다는 말로 들렸다. 그리고 이렇게도 들렸다. 완성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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