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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교사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한 인간의 삶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것들 중 사랑과 전쟁은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특히 전쟁은 승패에 상관없이 삶을 파괴시킨다. 언제 죽음의 고비를 만날지 모르는 숨막힘의 연속이다. 그런 상황에도 사랑은 존재하여, 불안한 삶을 지탱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랑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라 여긴다. 죽음이 갈라놓아도 사랑은 영원히 살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홍콩에 살고 있는 한인 2세 재니스 리의 첫 소설 <피아노 교사>에 사랑이 있다. 더불어 전쟁까지.
한 남자(윌)과 두 여자(트루디, 클레어)의 이야기. 두 여자는 같은 공간(홍콩)에서 각기 다른 시기에 한 남자를 사랑했다. 트루디는 전쟁 중에 죽었고, 클레어는 전쟁이 끝나고 홍콩으로 왔다. 윌은 트루디를 잃었고, 클레어를 통해 그녀를 보았다. 그러나 클레어는 알지 못했다.
월과 트루디가 함께 했던 1941년부터 1943년 홍콩은 혼란스러웠다. 부유한 집안에서 화려하게 자란 아름다운 혼혈 트루디는 언제나 거만했고 당당했다. 그녀은 영국인인 윌을 진정 사랑했다. 일본이 홍콩을 점령하자, 중국인이었던 트루디와 달리 영국인이었던 윌은 수용소로 가게 된다. 트루디는 윌을 수용소에서 나오게 하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다. 신념이 강했던 윌은 트루디의 마음을 외면했다. 전쟁이 끝났고, 윌은 혼자 남았다. 트루디가 없는 윌의 삶은 어떤 의미도 없었다. 그런 그 앞에 나타난 여자, 클레오.
1952년 영국에서 남편을 따라 홍콩에 온 클레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낯선 홍콩, 새롭게 변화하기 좋은 곳이었다. 감춰졌던 욕망이 세상을 향해 드러난다. 소설의 제목인 피아노 교사는 바로 클레오. 피아노를 가르치는 소녀의 집에서 운전기사인 윌을 만난다. 클레어는 윌에 대해서도 그가 사랑한 트루디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사랑은 이미 시작되었다.
점점 윌에게 빠져드는 클레어는 우연하게 참석한 모임에서 트루디에 대해 듣게 되고 윌에게 느겼던 차가움의 이유를 알게 된다. 10년 동안 윌이 밝히려 했던 트루디의 죽음과 그녀가 남긴 아이. 전쟁이라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탐욕을 위한 음모와 배신. 모든 것이 확연해졌고, 클레오는 남편과도 윌과도 헤어진다.
소설은 아름다운 슬픔이었다. 홍콩이라는 도시의 화려함이 전쟁으로 인해 한순간 사라지며 혼란에 빠진 모습은 트루디의 기구한 운명과 닮았다. 소설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홍콩이라는 배경때문일 것이다. 홍콩은 중국이면서 영국이었고, 그들은 중국인도 아니면서 영국인도 아니었다. 중국인이었지만 중국에 흡수되지 못했던 트루디, 영국인이었지만 중국인과 다름없었던 윌, 영국이 아닌 홍콩에서 자신을 발견을 클레어.
그들은 모두 외롭웠다. 그 외로움은 홍콩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작가 재니스 리가 느낀 것과 같으리라. ‘이 모든 것을 통해 그녀를 지탱해주는 것은 단순한 깨달음이다. 일던 저 거리고 나서기만 하면 된다는 것. 그러면 그녀는 거리 풍경 안으로 녹아들고, 거리의 리듬에 흡수되어 어렵지 않게 세상의 일부가 될 것이다.’ 혼자 남은 클레어의 독백과도 같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외로움은 곧 익숙해지고 사랑이 곁에 없어도 삶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