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험한 책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일이백 년 또는 이천 년의 세월을 견녀내는가 하면 모래 속에서도 살아남는 저 내구성 있느 물체와 인간의 관계는 결코 무해無害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옳다. 저 부드럽고 쉽게 소멸되지 않는 책이라는 사물은 인간과 숙명적으로 맺어져 있다고.’ p83
‘위험하다’란 말은 유혹과 같다. 그리하여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이 하고 싶다.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도 제목처럼 무척 매력적인 책이었기에 <위험한 책>에 대한 기대도 컸다. 얼굴은 사라지고 책이 대신한 한 남자의 모습인 표지도 독특하다. 과연, 책은 얼마나 위험할까?
블루마 레논이라는 대학 강사가 차에 치여 죽었다.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다. 문제는 그녀가 ‘에밀리 디킨슨’의 구판본 시집의 두 번째 시를 읽으려다 사고가 났다는 점이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지만, 한 편에선 블루마는 문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책에 의한 희생자였다.
블루마의 동거인이자 화자인 나는 그녀를 대신해 강의를 맡게 되었고, 그녀에게 배달된 한 권의 책과 마주한다. 시멘트가 묻어 있고, 책엔 내가 모르는 낯선 남자에게 쓴 블루마의 메모가 있다. 그 남자는 누구이며, 이미 죽은 사람에게 왜 배달이 되었을까?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녀의 지난 행적을 찾다가 책의 주인격인 남자의 소식을 접하고 긴 여정을 시작한다.
책의 주인을 찾아 가는 과정은 서고와의 만남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은 단순한 애서가들이 아니었다. 책에 중독이 되고, 책에 미친 사람들의 서고는 마치 거대한 성과 같다. 책을 배열하는 순서, 고전을 읽을 때는 촛불을 켜고 고전 음악을 듣고,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 그 책과 관련된 책을 20여권을 함께 읽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책 속에 묻혀 책외엔 어떤 것도 의미가 없는 사람들. 심지어 배달된 책의 주인은 벽돌이 아닌 책으로 집을 지었다.
블루마를 사랑했던 남자, 그녀가 책을 보내 달라고 부탁으로 집을 부셔가며 그 책을 찾아 보낸 것이었다.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 다른 책들은 찢기고 사라졌다. 책을 사랑했지만 그에겐 블루마에 대한 사랑이 더 컸나 보다. 하여 남자에게도 그 책은 위험한 책이 되어버렸다. 반대로 책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만이 책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말이 맞다.
나도 책을 좋아하는데,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침대 구석에 쌓인, 상자에 담겨있는 내 책들. 책으로 지어진 집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공간이 적다는 이유로 책을 소유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여전하게 당장 읽지 않을 책 주문을 하고 다시 쌓인 책을 보며 고민한다. 내 일상을 잠식하는 책, 위험한 존재일까? 그래도 책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