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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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w: 새벽 세시예요. 북풍이 부나요? 굿나잇.

15분 뒤
세시 십칠분이예요. 서풍이예요. 쌀쌀하고요. 굿나잇.

 깊은 밤 깨어 있을 때가 있다. 적막하기까지 한 시각, 그럴 때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오직 온라인뿐이다. 카페에 접속하거나 블로그에 글을 남기기라도 하면 같은 시각 깨어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그 반가움이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익숙한 닉네임도 여전하게 타인이다. 타인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몇 번의 만남, 몇 번의 통화, 몇 번의 메일로 가능할까. 운명처럼 첫 눈에 반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공통된 주제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누구나 영화처럼 운명같은 사랑을 꿈꾼다.

한 통의 잘못된 메일로 사랑이 시작되다? 무엇이 그들을 사랑하게 했을까? 매일 아침 메일함을 확인하면서 스팸 메일로 분류된 낯선 메일을 확인하지 않는 내게 처음부터 끝까지 메일로 이뤄진 그들의 사랑은 설렘을 안겨주었다. 잠에서 깨어 메일을 확인하기 전 기대와 설렘은 메일의 존재 여부로 가능하며, 어떤 내용인지에 따라  설렘의 유지와 절망으로 나뉘게 된다.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일상의 작은 변화를 원했는지 모른다. 상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이름뿐, 점점 상대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사람은 어떤 음악을 좋아할까, 체크 무늬 셔츠가 잘 어울릴까, 목소리는 어떨까. 은밀한 일탈이 아니라고, 그저 메일로 나누는 우정이라고 선을 긋기도 하지만, 레오와 에미는 서로의 메일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것은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이었다. 사람의 감정은 사소한 것에서도 상처받기도 하지만, 그 사소함에서 다시 위로받기도 한다.  나는 이미 소설 속 에미가 되고 말았다. 


 <당신에게 메일을 쓰고 당신의 메일을 읽는 시간이 저에게는 일종의 ‘가족타임아웃’이에요. 이 시간이 일상 밖에 있는 작은 섬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그 섬에 당신과 단 둘이서만 머물고 싶어요. 당신만 괜찮다면요. p 149 에미의 메일 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상관없어요. 나는 당신의 글과 사랑에 빠졌어요. 당신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돼요. 얼마든지 딱딱하게 써도 돼요. 나는 그 모든 것을 사랑하니까요. p 153 레오의 메일 중에서>

 글에 감정이 있을까? 있다 해도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감정이 있어야 한다.  각자만의 공간은 이제 두 사람의 공간이 되버렸고, 레오와 에미는 서로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연인과 이별을 했고, 어머니를 잃은 레오와 별 문제 없어 보이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에미는 사실, 모두 외로웠던 것이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잠들지 못하는 새벽, 서로를 위한 자장가는 서로에게 보내는 메일뿐.  만나려했던 시도는 물커품처럼 사라지고, 에미가 보낸 메일은 수신자를 찾지 못한다.  그들의 사랑은 다시 서로의 메일을 확인할 수 있는 메일을 갖게 될까?  

 두 사람의 사랑이 위태로워 누군가는 불안해 할 거이며, 누군가는 안쓰러워 할 것이다.  닿을 수 없는, 아니 그럴 수 없는 그 애절함이 더 가슴 아팠다. 바람이 가을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일까, 나도 손편지는 아니더라도 스팸 메일이 아닌 누군가의 메일이 받고 싶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쓰는 글, 편지. 깊은 밤 깨어 있게 된다면, 나는 어쩜 이 책을 만나 같은 마음을 품은 이의 메일을 기다리며 받은 메일함을 클릭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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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7 2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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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8 0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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