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는 외도나 불륜을 배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부적절한 관계라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다. 혼자만의 사랑, 지속되지 못하고 어긋나 버린 사랑, 드러내지 못하는 숨겨진 사랑 등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양한 사랑의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를 대신하는 말 중의 하나가 아닐까.
 
 <더 리더>에서 사랑을  단순한 연애 감정만이 아닌 그에 따른 인간의 심리를 아우르는 것, 그리하여 전체적인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연결시켰던 베른하르트 슐링크. 그의 다른 소설 <다른 남자>는 제목에서 다소 강한 외설의 느낌을 풍긴다. 결혼과 동시에 부여되는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권태로운 일상에 대한 회의를 새로운 사랑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케 한다. 책엔 표제작인 <다른 남자>를 포함해 <소녀와 도마뱀>, <외도>, <청완두>, <아들>,  <주유소의 여인> 등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소설이 수록되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유려한 문장을 통해 인간 내면의 사랑과 갈등을 말한다.
 
 아버지가 아꼈던 그림이 간직한 비밀을 파헤지는 듯 시작된 <소녀와 도마뱀>은 무척 인상적이다. 어머니는 마치 그 그림 속 여인을 질투하는 듯 그림으로 인해 아버지와 잦은 싸움을 벌인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아버지가 유대인들에게 중대한 죄를 지었으며 그림이 그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너도 젊었을 때 얼마 동안은 선택을 할 수 있어. 이것을 하거나 저것을 할 수도 있고, 이 사람과 살거나 저 사람과 살 수도 있지. 하지만 어느 날 너의 행동과 그 사람이 네 인생이 되버리는 거야. ”p35 
  
 아버지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평생 죄책감에 사로잡혀 그 그림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었던 것 일까. 화자인 나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 그림은 그에게 비밀스런 존재가 된다. <소녀와 도마뱀>을 내내 상상했다. 아버지가 사랑했던 여자라고 생각했던 그림 속 소녀를 화자는 사랑했던 것일까?
 
 표제작인 <다른 남자>는 죽은 아내에게 온 한 통의 편지로 인해 아내의 불륜을 확인하고자 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편지 속 아내는 명랑하고 기품있는 여자였다. 자신이 알고 있던 아내가 아니었다. 아내의 다른 남자에 대해 질투로 시작된 감정은 그를 찾아나서게 한다. 낯선 도시에서 만난 아내의 다른 남자. 그는 허영심이 가득찬 볼품 없는 남자였다. 그를 통해 아내의 다른 모습을 듣게 되면서 아내에 대한 원망과 질투심은 사라지고 일에만 충실했던 자신을 떠올린다.
 
 “ 리자가 당신 곁에 머문 까닭은 그녀가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좋지 않은 시절에도 말입니다. 좋은 시절에 그녀가 나를 사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말이죠. <중략> 나는 당신처럼 효율적이고 정직한, 쀼루퉁한 괴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보지,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은 보지 못하죠.” p186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는 항상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모든 남편들이 그러하듯이. <다른 남자>는 부부 생활은 길고 긴 대화 같은 것이다. 결혼 생활에서는 다른 모든 것에 변화해 가지만, 함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대화에 속하는 것이다. 라는 니체의 말을 되뇌이게 한다.
 
 그 외에 통일된 독일속에서 살아가는 동독과 서독 사람들의 오해와 갈등을 다룬 <외도>, 세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며 그 생활을 지속하고 싶은 이기적인 남자의 이야기인 <청완두>, 자신이 일과 성공을 위해 이혼한 남자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해왔다고 믿었지만 인생의 허무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를 그린 <주유소 여인>.
 
 적나라하게 드러난 표현없이도 소설은 충분히 외설적이다. 사랑으로 불리는 여러가지 관계와 형태에 대해 어느 하나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수 많은 관계속에서 선택을 하거나 받는 것만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며 그것은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내린 결단뿐만 아니라 우리가 내리지 않은 결단까지도 장부에 기록해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321 <주유소 여인 중> 는 문장과 같은 뜻을 지니게 되리라. 사랑에 있어서도 우리는 선택한 사랑외에 다른 사랑을 꿈꾸기도 하고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어느 곳에서 있지만 아무데도 없는 사랑, 때로는 구원이지만 때로는 영혼을 옥죄는 감옥 같은 사랑’이라는 표지의 글때문일까. <다른 남자>보다 원제 <사랑의 도피>가 이 책의 제목으로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남아 있는 누군가도 있을 터.  언제나  어느 누군가에게는 아픔으로 남기도 하는 사랑.  진정 완전한 사랑은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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