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현대문학 테마 소설집 1
하성란.권여선.윤성희.편혜영.김애란 외 지음 / 강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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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 문학을 이끌어 가는 9명의 인기 여류작가가 서울을 테마로 소설을 썼다. 물론 9명의 작가 모두 서울 태생이거나 온전하게 서울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인 서울.  내 이름 그대로 서울에 살게 될 줄 꺼라 믿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니 피식 실소가 터진다. 9명의 작가가 그려낸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순서대로, 좋아하는 작가대로 읽어도 좋다. 서울을 꿈꾸는 사람들, 서울을 추억하는 사람들, 서울에 갇혀 사는 사람들. 서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잠시 접어두고 그녀들에 의해 새로이 탄생된 서울을 만나볼까?

 먼저 이혜경의 <북촌>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옥 마을로 나를 이끈다. 전재산을 사기당하고 친구의 집을 돌봐주며 삶을 이어가는 남자에게 나비처럼 한 여자가 날아온다.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남자와 모든 것을 원하는 여자의 만남. 마루에 앉아 햇볕에  머리를 말리는 여자를 상상한다. 춘몽같은 사랑은 금세 사라진다.  친구의 집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나비같던 여자도 날아가버린다. 그도 이제 서울을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적금을 들고 집을 마련해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서울. 그러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곳이 되고 말았다. 시간이 흐를지 않을 것 같은 북촌. 제발 그곳만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내게도 옹달샘처럼 계속 남아주기를 바라는 곳이니 서울에 터를 내린 모든 이에게는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권여선의 <빈 찻잔 놓기>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가득 채운 인간의 욕망을 노래한다. 서울에서 명예를 얻기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일인가? 인맥을 위해 적당한 아부와 적당한 가식이 필요한지 시나리오 보조 작가인 주인공만 몰랐던 것이다. 함께 작업하고 마음을 나눈다고 믿었지만 사람들의 관계는 이익을 위한 허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서울은 그녀를 옭아맨 올무가 된다. 아니, 그녀만이 서울의 실체를 몰랐는지 모른다. 여전하게 서울에 적응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강영숙의 <죽음의 도로>는 쓸쓸하다. 벌어먹고 살기 힘든 서울 살이, 빚을 정리하고 애인은 떠나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어디에서 죽어야 좋을까. 주인공은 서울을 탐색한다. 사고 발생률이 가장 높은 구간을 발견하고 실전에 옮기려 시도한다. 그러나 첫 번째, 두 번 째 모두 실패한다.  모든 것에 화가 난다. 마침내 죽음을 실행하는 날, 그녀가 안착한 곳은 바로 집. 결국, 서울은 죽음보다 삶이 더 강한 도시인가? 살기 위해 온 곳,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 서울이라는 것을 알기에 너무도 쓸쓸하다.

 편혜영의 <크림색 소파의 방>은 제목처럼 달콤하지 않다. 오히려 처절하고 끔찍하다. 오랜 시간 지역 근무를 마치고 수더분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얻었다. 이제 마지막 행복을 찾아 서울로 향하는 부부. 새로 산 살림이 꾸려질 서울의 보금자리,그들에겐 포근한 크림색 소파같은 서울이 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변수가 존재하는 함수의 그래프 같은 것. 폭우 한가운데 멈춰버린 차,  온다는 보험회사 직원은 오지 않고, 크림색 소파는 아파트 어느 자리에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삿짐 센터 직원의 전화만이 계속된다. 국도 낡은 주유소에서 만난 청년들과 실랑이가 벌어진다.  과연, 그들이 꿈꾸는 서울에 안착할 수 있을까?

 그 외에 타인의 삶에 차단거리를 두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김숨의 <내 비밀스런 이웃들>, 이민간 동창의 할머니를 위해 지난 시절 그들이 함께 했던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 변화된 서울과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독특한 소설 <소년은 담 위를 거닐고>도 흥미롭다.

 서울, 화려한 빌딩 숲 사이에 북촌이 존재하는 곳. 누군가에게는 행복으로, 누군가에게는 절망으로 기억되는 곳.  9명의 작가가 그려낸 서울은 서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서울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읽는 동안 한때, 정기적으로 서울을 향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서 상기되었던 나, 지인을 만날 설렘과 해야 할 일들을 기록하던 나. 서울이라는 도시에 삶을 뿌리내린 사람들도 작은 에피소드 심어둔 사람도  나처럼 이렇게 서울을 생각할까. 그렇게 잠시 스쳐 지나간 서울, 내게는 한 장의 추억으로 남은 곳. 이제 서울이 그리워질 때마다 이 책을 펼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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