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기대를 갖고 만난 책이 기대 이상일 때 즐거움은 배가 된다. 괜찮은 소설집이라는 호평이 끊이지 않았던 김애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이 바로 그것.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며 탄탄한 문장력, 거기다 무거운 주제로 가라앉지 않도록 위트로 버무렸다. 9개의 단편 모두 최고의 별점을 준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이 단편이 직접적으로 김애란을 만나게 했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 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러므로 그사이, 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p32 소설은 이 문장으로 시작해 이 문장으로 끝난다. 언제부턴가 편의점은 현대인의 일상 속 필요충분조건이 되버렸다. 아니 잠식해버렸는지 모른다.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곳인 양 사람들은 편의점에 간다. 편의점을 둘러싼 사소한 일상임에도 소심한 화자는 전전긍긍한다. 택배 서비스로 주소를 알게 되지는 않을까, 휴대전화 충전시 문자를 훔쳐보지는 않을까, 남들이 하지 않는 걱정을 사서하는 경우다. 정작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는 이가 없다. 바쁜 생활, 도심 한복판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해도 무심하다. 현대인의 삶은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곳, 편의점. 모든 것이 다 있었지만 정작 그곳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 쓸쓸하다.
 
이과 같은 느낌은 <영원한 화자>의 다음 구절과 이어진다.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 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하여,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을 베이지 않고도 칼을 씻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p 138 
 
표제작 <달려라, 아비> 속 아비가 누구일까 호기심을 불러온다. 아비가 주인공의 아버지일꺼라 예상이나 했을까? 생물학적 아버지 단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를 아비라 불렀다. 내게 생명을 준 이, 그리운 존재. 임신한 엄마를 버리고 떠났다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아니던가. 택시기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단할지, 삶이 얼마나 궁핍할지 예상해보지만 소설 속 두 모녀는 씩씩함을 벗어나 유쾌하다.  언제나 세상을 향해 달리고 있을 꺼라는 상상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대신한다. 그런 아버지가  미국에서 이복 형제의 편지로 돌아왔다. 도대체 이런 슬픔을 담담하다 못해 평온하게 까지 하는 힘, 김애란이 더 궁금하다.
 
전반적으로 이 소설집은 아버지와 인간의 내면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나눠진다.  놀이공원에서 아들을 버린 아버지, 그러나 화자는 자신이 아버지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사랑의 인사>, 어느 날 딸의 자취방으로 찾아온 무기력한 아버지. 하루종일 방안에서 라면을 먹거나 텔레비젼을 보는 아버지, 결국 딸은 텔레비젼 전기 선을 잘라버리고 만다. 준비해둔 용돈은 아버지에게 딸의 방을 떠나라는 여비가 되고 다시금 혼자 잠 못드는 밤을 지내는<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존재하나 언제나 부재로 기억되는 아버지. 아버지와 더 가깝게 지내고 싶지만 이상케도 먼 거리를 유지하려는 듯 보여지는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그러나 작가 김애란은 아버지의 역할에 있어 생물학적 기능으로써 말할뿐 더 이상의 큰 의미는 부여하지 않는 듯 보여진다.  아버지가 없어도 삶은 지속된다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소설 속 아버지들이 아닌 다른 아버지를 원하고 있음을 말하는가.
 
인상적인 또 하나의 단편은 <노크하지 않는 집> 같은 구조의 5개의 방에 다섯 여자가 산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 외의 나머지 4명의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 널어 놓은 빨래로, 화장실 머리카락으로, 깊은 밤 울음 소리로만 거기에 그녀들이 살고 있음을 알 뿐. 연이어 화자의 신발이 사라지 순간 타인의 공간이 궁금하다. 상주하는 시간이 다르므로 내 방인 양 열쇠공을 부르고 문을 연다. 방 안엔 화장의 방이 그대로 펼쳐지고, 순간 읽는 이에게도 어지러움이 몰려온다.
 
타인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현대인. 그러나 반대로 무관심이 너무도 두려운 사람들. 많은 사람들 속에 살아가지만 진정한 소통을 나누는 이를 찾기 어렵다.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이와 상관없이 살고, 이웃을 시작으로 사회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삶. 어쩌면 우리가 속한 세상의 진실은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김애란이 그린 소설로 만난 삶은 무서움을 벗어던진 씩씩함으로 보여진다. 그리하여 읽는 이도 씩씩하게 세상을 향해 달릴 만반의 준비 자세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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