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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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탯줄을 잘라낸 잠재적 기억때문인지 마음속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 잡는 것 처럼 내게 바다는 그러하다. 지척에 바다를 두었지만 바다를 만나기는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바다를 만났다. 돌아오는 길에 EBS<책으로 만나는 세상>에서 작가와의 만남를 듣던 중 목소리가 커지고 호들갑스럽게 환호성을 지르는 나. 바로  <나는 여기가 좋다>였다. 한창훈은 분명 생경한 작가임에도 이 책은 묘한 끌림이 있었다. 그리하여 한창훈과의 설레는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계절마다 다른 빛으로 물드는 바다, 그 바다를 분신처럼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비릿한 바다 냄새를 가득 담은 소설, 파도 소리를 듣는 듯 책 장을 넘긴다.  

 바다와 배밖에 모르던 늙은 어부, 그에게 세상은 바다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배를 처분해야 할 때가 오고, 아내는 뭍에서 살자한다. 마지막 만찬인 듯 늙은 어부는 아내를 배에 태우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간다. 배 위에서 눈부신던 바다와 함께 젊었던 지난 날을 회상하며 아내의 진심을 듣는다. 운전 하나 제대로 못하고 육지가 무서운 그는 섬을 떠날 수 있을까.  늙은 어부의 독백처럼 느껴지는 <나는 여기가 좋다>라는 말이 슬프게 느껴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잘 모르겄어.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지.”
 “습관이요.”
 “그렇겄지. 배 타는거 말고는 하나도 안 해봤으니까.”
 “그랬소. 당신은. 늘 바다와 배만 보고 살았소. 그러다 이렇게 된 거요. 그러니 인자 여기서 뭘 어떻게 하겄소?”p23

 시종일관 투박하지만 경겨운 사투리로의 술집 여주인이 낯선 손님에게 쏟아내는 사랑이야기 <밤눈>. 이혼하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여자와 어촌으로 전근 온 남자와의 사랑. 샌님처럼 조용한 도시 남자가 들려주는 말이 거칠고 촌스러운 여자에게는 마냥 좋았다.  남자에게 작은 어촌에서의 만남은 잠시 스쳐가는 것일지 모르나 순수한 그녀의 순애보는 눈처럼 하얗게 묘사된다.

 쓸쓸한 섬에서 남편을 잃고 자식들은 뭍으로 내 보낸 노인들의 삶의 회한을 그린 <바람이 전하는 말>. 섬 떠난 여행의 웃지 못한 에피소드를 그린 <삼도노인회 제주 여행기>. 두 편을 통해 젊은이는 거의 없는 섬의 현실을 만나게 되니 씁쓸하다.

 자살을 하기 위해 섬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섬은 삶의 현장이라고 화를 내는 듯한 <섬에서 자건거 타기>와 자식만은 바다를 떠나게 하고 싶은 부모의 바람과는 반대로 바다에서 살고자 뭍에서 돌아오는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아버지와 아들>은 <나는 이곳이 좋다>의 어부가 주변 인물로 등장하는 점도 흥미롭다.

 표제작 <나는 여기가 좋다>를 시작으로 바다를 품고 사는 어촌, 섬마을 사람들의 평범한 삶의 향연. 책 속에 빠져들며 연신 ‘아, 어쩌면 좋을런지.. 이 책이 정말 좋다’ 중얼거리며 행복해했다. 그것은 너른 갯벌에서 바지락을 잡던 엄마에 대한 그리운 추억에서 시작해 기름 유출로 검게 물든 바다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 때문이었으리라.

 “왜 그냥 있지 않고 멀리 흘러갈까요. 바다는”
 “흐르지 않으면, 바다는, 아무것도 안 돼요. 어장도 안 살아나고.”
 “그런가봐요. 흘러야 하는 것이겠죠. 눈물처럼 말이죠.” p172 

 바다는 커다란 눈물은 아닐까. 섬 사람들에게 삶의 시작이고 끝인 바다. 하루 하루 그물을 걷어올리고 노를 젓고, 때론 고립되기도 하고 파도가 휩쓸고 간 곳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흘린 눈물들. 외롭고 고단한 일상을 위로하듯 한창훈은 재치스러운 말투로 그들을 표현한다. 섬을 그려내는 작가, 그 역시 섬사람으로 바다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바다를 품고 살고 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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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6 1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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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7 1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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