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창비시선 279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의도적으로 시집을 구매하고 시를 읽으려 애쓰고 있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날이 갈수록 건조해지는 마음을 위해, 시를 읽고 있는 동안 잠시라도 말랑말랑한 감성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시를 소리 내어 읽고 있노라면, 시에 취하게 되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하다. 특히나 비가 오는 날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라는 <수선화에게> 한 구절이 맴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그래서 혼자가 아닌 둘이 되어 진한 포옹을 하려 애쓰는게 아닌가 싶다.

 정호승의 시집은 <슬픔이 기쁨에게> 이후로 참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 10대의 끝, 20대 초반의 기억을 제외하면 어디 정호승의 시집뿐이겠는가.  포옹이라는 따뜻한 말과는 다르게 시집에 흐르는 기운은 쓸쓸함이 가득 묻어나는 고독이었다. 아니, 외로운 사람, 고독한 사람곁으로 다가서 그를 위로하려는 마음이다. 

 밤의 연못에 비친 아파트 창 너머로
 한 소년이 방바닥에 앉아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있다
 나는 그 소년하고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
 나도 라면을 들고 천천히 밤의 연못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개구리 두꺼비 소금쟁이 부레옥잠 들이 내 뒤를 따른다
 꽃잎을 꼭 다물고 잠자던 수련도 뒤따라와
 꽃을 피운다 (17 쪽, 밤의 연못 전문)


누구나 한 번쯤 그 소년, 소녀가 되었던 시절의 기억이 있으리라. 그럼에도 과거가 아닌 현재 만나게 되는 어린 소년을 외면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화려한 도시속 소년은 친구로 인해 즐거운 파티를 연다. 개구리, 두꺼비, 소금쟁이와 함께 활짝 핀 수련은 환하게 밤을 물들이니 이제 소년은 외롭지 으리라. 

 집에 들어가도 나는 집이 없다
 나는 집 없는 집에서 산다
 냉장고가 내 아내고 세탁기가 내 딸이다 (64쪽, 집 없는 집의 일부)

 문 없는 문을 연다
 이제 문을 열고 문밖으로 나가야 한다
 문 안에 있을 때는 늘 열려 있던 문이
 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갑자기 쾅 닫히고 보이지
는다
그래도 문 없는 문의 문고리를 당긴다
 문은 열리지 는다 (74쪽, 문 없는 문의 일부)

집으로 들어가는데 집이 없고, 문 없는 문을 열다니. 시인이 보기에 우리가 사는 집은 진짜가 아닌 집으로 느껴졌나 보다.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엄마가 있었던, 강아지 존이 반겨주던 집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는구나.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도 없고, 존이라는 잡견도 없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도 없다. 집 없는 집에서 사는 우리네 모습이 한없이 쓸쓸하다.

 정호승의 시는 유독 노랫말로 많이 쓰인 연유로 다른 시들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정호승의 시를 읽다 보니 저 멀리 작은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정호승을 좋아하던 친구, 문예창작을 공부하던 시절 정호승님이 오셔서 친필 사인을 받았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던 친구. 그 후에 만났을 때 그 시집을 내게 건넸다.  자신의 이름으로 받은 정호승 시인의 사인이 담긴 책. 엉겹결에 받았지만, 친구가 자신에게 아주 소중한 것을 내주었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시를 선물해서 행복하고, 시를 선물받고 행복해 하는 이가 점점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하여 시가 풍요로운 세상이 되어 나같이 의도적으로 시를 읽지 아도 자연스럽게 시가 우리 곁에 머무르면 좋겠다.

** 이 시집을 선물해주신 소중한 당신, 마음가득 당신을 포옹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