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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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유행이라는 단어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변화하는 세상에 따라 문학이 추구하는 가치관도 다양하게 발전한다. 80년대라는 무거운 지게를 짊어졌던 시대의 작가들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전한다. 90년대가 지나고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면서 문학은 새롭게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하여 기발하고 신선한 발상의 문학이 우리 앞에 등장하게 된다.
 
 소설가 정이현은 이제 인기 작가로 통한다. 베스트 셀러 <달콤한 나의 도시>가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지도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달콤한 나의 도시>보다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 더 많은 애정을 느낀다. 뭐랄까, 정이현이라는 이름과 매우 잘 어울리는 소설이라고 할까.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소재, 문체는 당돌한 느낌마저 든다. 8편의 소설, 화자는 모두 여성들이다.  
 
 얼핏 보면 신세대적 연애소설의 모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연애에 대한 소설은 아니다. 욕망을 위해 위선과 가식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여성들, 이미 어른의 세상을 알아버린 더이상 순수하지 않은 당돌한 소녀들의 연애는 일탈 행위와 같다. 비꺽거리는 관계의 부모에서 납치 자작극을 벌이는 여고생을 소설속에서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시대는 이미 지나버렸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경제적 안정 느끼게 되자, 두 번째, 세 번째, 새로운 결혼에 대한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고, 정부를 살해하고도 태연하게 일상 속으로 복귀한다. 
 
 정이현은 <낭만적 사랑과 사회>, <순수>, <소녀시대>라는 내용과는 상반된 제목으로 인해 사회가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기존의 통념이 얼마나 무지한지 꼬집고 있다. 오직 여성에게만 순결을 요구하는 사회의 잘못된 관습을 발칙하게 비웃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변화된 이 시대의 여성들의 모습인지 모른다.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스러운 삶을 때로 악녀가 되기도 하는 여성들. 남성적 시선이 아니기에 많은 여성 독자들은 통쾌한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정이현의 소설은 기존 60년대 여류 작가들과는 분명 다르다.  매끄럽고 깔끔한 문장들, 냉소적인 면에서 은희경을 떠올리지만 그보다 부드럽고 유쾌하다. 새로운 시도이며 더 친근한 것이 사실이다. 같은 세대라는 이유로 작가 정이현에 대한 관심을 놓지 못하고 있다. 반면 같은 시간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80년대 출생 이력을 가진 작가들의 책은 의도적으로 멀리 하게 된다. 신세대적 발랄함, 톡 쏘는 청량음료 같은 글들이 반갑기도 하지만, 아직은 친숙해지기는 좀 버겁다. 문학이 그만큼 시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표현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기 작가라는 타이틀보다 소통하는 작가라는 타이틀으로 소개되는 정이현이면 좋겠다. 산뜻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산뜻함으로 시대를 묘사하는 그런 소설가가 되면 좋겠다. 일부 편향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벗어난 시선을 둘 수 있는 작가였으면 좋겠다. <달콤한 나의 도시>, <오늘의 거짓말>도 나쁘지 않았지만 앞으로 그녀의 소설에서 날카로운 성숙미를 만나기를 바란다.
 
* 두 번째 읽은 소설, 이제서야 리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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