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걸어간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몽환적인 표지는 금세 나를 윤대녕만의 세상으로 이끈다. 네 번째로 만나는 그의 소설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그 설렘을 기억하게 한다.  같은 듯 다른 느낌의 소설들, 혹독하게 말하자면, 윤대녕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와 연결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윤대녕의 소설에는 언제나 낯선 이와의 만남, 일상에서 벗어난 또 다른 행로,  누군가의 부재, 결핍이 있다. <누가 걸어간다>(문학동네, 2004)소설집에서도 마찬가지다. 6편의 중단편의 소설을 통해서 인간이 느끼는 고독, 상실, 절망에 대해 쓰고 있다. 그의 글은 아름답다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색으로 표현하자면, 보랏빛의 소설, 서정적인 신비로움이 아닐까 싶다. 

 표제작인 <누가 걸어간다>를 비롯해 <찔레꽃 기념관>, <올빼미와의 대화>, <흑백 텔레비젼의 꺼짐>의 단편들은 주인공의 행동,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 일상의 풍경의 묘사가 탁월하다. <누가 걸어간다>의 주인공은 몇 년 전 아내와 이혼을 하고 암 진단을 받아 생의 마감을 생각하며 파주로 들어온다. 때마침 근처 군부대에서 탈영한 남자는 미용사인 여자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두 남녀의 모습은 주인공과 학원강사인 한 여자와의 만남과 비교되며 절망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탈영병은 암에 걸린 주인공과 겹쳐진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삶은 그 순간,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행 간 사이에서 백색의 찔레꽃이 튀어나올 것 같은 <찔레꽃 기념관> 은 무척 아름다운 단편이다. 시인이 되고자 했으나 결국 삼류 영화의 시나리오를 손봐주는 소설가로 전락한 주인공과 일이 없는 방송작가의 우연한 만남은 둘 사이에서 <찔레꽃>에 대한 추억은 둘 사이를 점점 긴밀하게 만든다. 소설가가 어린시절 만났던 이발사의 집 앞에 가득했던 찔레꽃, 시인이었던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방송작가의 병든 아버지가 부르던 노래 찔레꽃. 이발사이면서 시인이었던 그는 같은 사람이었을까. 추억과 동시에 붙잡을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쓸쓸하다.

 윤대녕의 소설 속 화자는 항상 자신이 누군인가를 찾아 헤메고 있다. <흑백 텔레비젼의 꺼짐>에서 주인공 서정원은 권력자의 서자로 자신의 아버지를 알지 못하다 자신의 첫 남자가 자신의 생부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녀를 사랑한 일도를 남겨둔 채, 서사모아에서 자살을 하고 만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물방울 같은 존재였어요. 무엇에 부딪히면 툭 꺼져버리는 존재말예요. 그걸 터뜨리지 않기 위해 정말 무던히도 애를 쓰며 살아왔어요. 매순간 숨이 차게 말예요. 하지만 그게 햇빛 속에 떠 있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버티겠어요.”p55

 소설 속 정원만 물망울 같은 존재일까.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물방울 속에 갇혀있거나, 물방울 속에 살고 있는 타인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서로의 물방울을 터뜨렸을 때, 비로서 관계는 확장되고 커다란 그들만의 물방울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말없이 혼자 사라져 여관방에 누워 있거나 일부러 먼 곳에 있는 술집에 찾아가 문을 닫을 때까지 벽을 바라보고 안자 있거나 혹은 나처럼 걷고 있거나 또한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엉뚱한 장소에서 마치 타인인 듯한 심정으로 자신의 우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름 없는 존재들 말이다. 알고 보니 그게 모두 사람이라는 존재였다. p247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처음에도 말했지만, 중복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누가 걸어간다>를 읽으면서 단편 <배암에 물린 자국>을 생각했고, 걷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는 <사막의 거리, 바다의 거리>를 떠올린다.  윤대녕의 집필실이 제주도여서 그럴까, 꼬집어 말하자면 낯선 공간, 여행지,  섬은 제주도라는 공간과 마주한다. 그리하여, 그 곳에서 소설석 화자를 통해 작가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는게 아닐까 하는 엉뚱함으로 이어진다.  비릿한 바다냄새, 그럼에도 나는 그의 성실한 독자이고 싶다. 그가 이끄는 대로, 그의 글 속을 유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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