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모든 나라는 그 나라만의 역사를 갖는다. 그 역사가 환희로만 쓰여졌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역사는 슬픔, 고통을 동반한다. 우리나라에게 일본강점기, 6.25가 그랬고, 많은 아시아들은 유럽의 강국들의 식민지로 살아온 시절이 그러하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우리는 그 역사로 인해 아직도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상실의 상속』이라는 절망이 가득한 제목의 소설은 인도의 칼림퐁이라는 마을, 1986년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1980대의 인도를 나는 알지 못한다. 히말라야 등반을 위한, 셀파, 티벳, 네팔이 자동으로 검색되는 곳, 칼림퐁. 그곳에 어떤 상실이 가득했을까. 

 칼림퐁에 ‘초오유’라는 저택에 퇴역 판사, 외손녀 사이, 요리사, 그리고 판사의 애견 무트가 살고 있다. 판사는 냉소함으로 일관하며 오직 무트에게만 애정을 쏟는다. 요리사는 미국으로 건너간 아들 비주의 편지만이 즐거움이며 십대 소녀 사이는 가정 교사 지안을 만나기 전까지 건조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칼림퐁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비주가 살고 있는 미국의 뉴욕의 풍경이 교차하며 소설은 전개된다. 

 어느 날, 초오유에 지안에게 정보를 얻은 무장한 소년병들이 판사의 총과 음식을 빼앗아버린다. 이 사건은 모두에게 크나큰 상실을 주는 시작이 된다. 경찰은 엉뚱한 사람을 잡아 고문한고 그의 가족들은 판사에게 선처를 구하지만 판사는 냉담하다. 결국, 가족들은 판사에게 가장 소중한 무트를 훔쳐간다. 소설은 판사, 요리사, 사이의 과거로 거슬러 간다. 

 판사는 인도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간 엘리트였지만, 영국인이 되려 애쓰는 인도인을 경멸했다. 사실, 그 역시 인도인이 아닌 영국인으로 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 욕망은 아내를 구타하고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판사 역시 결국은 모든 것을 버리고 칼림퐁에 안주하고 만다. 고아가 된 외손녀 사이와 대면하고 만다.  단란했던 요리사의 가정, 아내의 죽음은 그에게 가장 큰 상실이었고 미국이라는 곳에서 비주가 성공하기만을 바란다. 부모를 사고로 잃고 고아가 된 사이에게 지안을 사랑하지만, 극심한 빈부, 환경, 사고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1980년대 미국에서 인도인들의 생활은 희망이었을까. 불법체류자, 뒷골목, 사람들의 천대, 여기 저기 일터를 옮겨다니는 것이 실상이었다. 그린카드를 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불법체류자들의 모습, 자신이 크게 성공한 줄 아는 가족들의 청탁 편지. 그 안에서 비주는 깊은 상실감에 빠지고 만다.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 현실은 유색인종,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소설은 칼림퐁이라는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의 세밀한 묘사, 해설처럼 그들의 일상을 기록한다. 소설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대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 인도, 그곳에는 다양한 인도인의 삶이 있었다. 영국을 흠모하고 문화를 받아들이는 삶, 인도의 전통적인 삶을 고수하고자 하는 이들, 카스트 제도에 억눌린 삶.

 역사는 이런 식으로 움직였다. 천천히 세워진 것이 순식간에 불타버리고,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 속에서 앞뒤로 도약하고, 젊은이들은 해묵은 증오에 휩쓸렸다.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은 결국 측정할 수도 없을 만큼 작았다. 493쪽

 1980년대 인도는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인도 자체가 절망에 휩싸였을 때, 칼림퐁의 초오유의 사람들도 절망속에 있다. 판사에게 사라진 무트, 사이에게서 멀어진 지안, 요리사에에게 연락이 되지 않는 아들 비주. 그들은 절대적인 절망에서 희망의 씨앗을 볼 수 있을까.

 복잡하고 모호한 소설이다. 끝내 소설은 어떤 희망도 보여주지 않는다. 1980년대를 지났지만, 인도를 비롯하여 미국, 영국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도는 영국이라는 역사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운명이라는 것으로 이어진 상실은 그렇게 상속되는지 모른다. 우리가 일본과의 해결되지 않는 관계를 상속받은 것 처럼.  크거나 작거나 우리는 상실감을 느낀다. 그 상실을 이겨내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애쓰는 과정이 삶이다. 『상실의 상속』, 소설 제목으로는 정말 멋지지만 결코 삶을 통해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수많은 상실의 상속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