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국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날개에 풋풋한 모습의 김연수처럼 소설 7번 국도는 낯설었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작가의 초기작을 읽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지금의 김연수가 아닌 10여전의 김연수를 만나는 일, 약간의 흥분과 설렘이 있다. 7번 국도라는 매개체로 작가 김연수는 독자에게 지도를 펼치게 한다. 그러나 7번 국도의 여행을 따라가는 것은 적지 않은 인내를 요한다.
 
 누구에게나 그만의 트라우마가 있기 마련이다. 삶을 노래하고 한 여자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싶었던 재현, 우연한 만남으로 운명처럼 다가와 그들의 인생에 한 분기점이 되어버린 화자, 재현이 사랑한 여자 서연, 자신만을 위한 포근한 공간을 원했던 세희, 그들이 꿈꾸던 7번국도, 지금보다 젊었던 그 어느 날, 나 역시 7번국도를 지났던 추억이 있다. 그 시절, 참 열정적이었던 모습이 스쳐지난다.

 비틀즈, 기형도, 팝송, 낯선 시, 그리고 조각 조각 나뉘 놓은 퍼즐로 이어지는 이야기. 과거로 현재로 이어지는 재현과 나의 만남, 언제나 등장하는 7번 국도. 재현에게 서연은 그 자체가 트라우마다. 사랑했던 여자, 이제 존재하지 않는 여자. 그 자리를 세희는 결코 대신할 수 없다. 그들에게 7번 국도는 어떤 의미였을까. 죽음이 함께 했던 그곳은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노래하게 했는가.

 소설은 사실 모호했고 난해했다. 이유도 모르게 은희경의 <그것은 꿈이었을까>가 자꾸만 오버랩되었다. 안개속을 걷는 듯한 느낌. 재현의 슬픔을 토해내는 소리가, 세희가 스스로를 못견뎌하면 그리워하는 일본 아버지, 외계인과 수신하는 카페 7번 국도 주인,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끝내 자살하고 마는 7번국도씨라는 인물. 90년대를 살고 있는 화자를 비롯한 주변 인물은 80년대를 이어온 상처를 이제 버리고 싶다. 7번 국도에 그들의 슬픔과 상실를 토해내고 자유롭고 싶어한다.  망각을 위한 여행이었는지 모른다.

 나의 문학적 폭이 좀 더 넓었더라면, 김연수가 살짝 비틀어 수록한 작품들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이 책에 더 빠져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듯 김연수는 자신의 시대를 껴안고 사랑한다.

사람은 모두 은어와 같은 것이다. 세희야, 넌 아느냐? 동풍이 불고 나면 다시 서풍이 불어온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서 벗어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야.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지. 네가 나를 떠났다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 것처럼 어차피 이 지상의 모든 것들은 한 번은 그렇게 죽게 된다. 하지만 벗어난 자리도 바로 너의 자리이고 돌아온 자리도 바로 너의 자리이다. 난 이제 곧 죽게 된다. 하지만 이 끝없는 윤회 앞에 도대체 죽음이란 없다. 불생불멸, 그 무엇도 없다. 숨결 없이, 그 본성으로 숨쉬는 단 한 가지, 그것말고는 도대체 아무것도 없다” 본문 202쪽. 세희의 아버지가 세희에게 들려주는 말은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삶에 대한 답이 아닐까.

 책을 덮고 다시 한 번 7번 국도를 검색해보고 주절 주절 중얼거린다. ‘동풍이 불고 나면 다시 서풍이 불어온다.’ 주문을 외듯 자꾸만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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