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네 (양장본) - 황금이삭 1
정현종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시집을 사둔지 몇 달이 지났다. 정현종님의 시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 시집을 구매한 것은 '견딜 수 없네' 라는 제목이 자꾸만 나를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대학 1학년 생일에 정현종님의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라는 시집을 선물받았다. 그 때까지 정현종이라는 시인을 알지 못했다. 스물에 만났던 시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그러나 사회에 나오고 사람에게 치이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아파하면서 다시 시를 만났을 때 그 느낌은 무척 달랐다. 물론 여전하게 어렵지만 그래도 자꾸만 읽게된다. 그렇게 정현종님의 시는 내게 위안으로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견딜 수 없기에 절망하고 아파하는 것일까? 이별, 죽음, 고통, 때로는 극도로 짧은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신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주지 않는다고 한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은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삶의 짧은 한 단면을 시라는 거대한 우주로 풀어놓는 정현종님의 시를 읽고 있으면 광활한 우주 공간에 작은 행성이 불과한 지구에 살고 있는 나란 존재는 미세한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듯하다. 세상을 아우르는 힘, 세상을 다 끌어안는 힘, 그 것이 시가 아닌가 싶다.

 말하지 않은 슬픔이......

 말하기 않은 슬픔이 얼마나 많으냐

 말하지 않은 분노는 얼마나 많으냐

 들리지 않는 한숨은 또 얼마나 많으냐

 그런 걸 자세히 헤아릴 수 있다면

 지껄이는 모든 말들

 지껄이는 입들은

 한결 견딜 만하리.

 물론, 나는 시를 잘 모른다. 시인의 말하고자 하는 웅숭깊은 속내를 알지 못한다. 그저 그 시를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깊은 호흡을 할 뿐이다. 내가 삼키고 있는 말들을 시인은 알고 있는 것 처럼 말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이 내가 살아온 삶의 곱절을 살았기 때문일까? 세상을 보는 그 깊은 혜안을 가진 이, 그를 우리는 시인이라 부르는가. 내가 지금껏 살아온 날들을 다시 살아내고 노년이 되었을 때 시인이 가진 눈으로 세상을 볼 수는 없겠지만  이 시를 기억하여 지금의 나같은 누군가에게  이 시를 이야기해 줄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 같다.

 모든 건 꽃핀다

 수선화가 활짝 피었다.

 두 색 한 송이.

 (괴로울 때 몽오리를 보았다)

 괴로움이 혹은 꽃피듯이

 꽃은 만개하였다.

 너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내가 꽃피었다면?

 나의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네가 꽃피었다면?

 아, 자연의 길은 그렇다.

 바라건대 우리가 바라는 바이다.

 모든 건 꽃핀다.

 바보도 꽃피고

 괴로움도 꽃핀다.

 이나 닦야겠다.

 너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 내가 꽃피었다면? / 나의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 네가 꽃피었다면?  우리는 종종 나의 고통만 보고 산다. 나의 고통이 제일 크기 때문에 다른 이의 고통은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세상사는 홀로 사는게 아님에도 그저 나만을 생각한다. 바보도 꽃피고 괴로움도 꽃핀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수만가지의 행복한 꽃, 괴로움의 꽃이 피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꽃들은 피어나고 질 것이다. 나는 어떤 몽오리를 품고 있는지가만 생각한다. 설령 고통의 몽오리라도 꽃은 피었다 질 것이니 모든 건 꽃핀다는 시인의 말은 내게 모든 건 지나간다는 말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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