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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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먹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나 가벼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관계의 시작이고 그것은 관계의 발전으로 이끄는 계기가 된다. 그러다 그 밥을 직접 해주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기도 한다. 내 손으로 쌀을 씻고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은 그 사람과 마주 앉을 황홀한 순간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사랑이 정체되어 있는 시간에는 그를 위해 밥을 하기도  싫고 그와 함께 밥을 먹는 것도 끔찍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음식의 맛을 느끼는 혀, 달콤한 키스를 꿈꾸게 하는 혀. 당돌한 느낌의 제목이다. 
 
 이 소설은 단순하게 정리하면 사랑하다 헤어지고 상대를 그리워하면서도 증오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여자의 직업이 오감을 가장 많이 필요로하는 요리사인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입술은 피가 몰리면서 붉어지고 부풀기 시작한다. 사랑을 나눌 때의 성기들처럼. 입술과 성기는 혀와 함께 특별한 성감대에 속한다. 모두 점막 피부로 되어 있고 신경이 밀집돼 있기 때문이다. 29쪽 요리는 즐거운 일이지만 어려운 일이다. 사랑도 즐거우면서 어려운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을 건 키친에서 요리강습을 하는 잘 나가는 요리사다. 그의 연인 역시 유명한 건축가다. 자신의 전부라 할 수 있는 키친에서 자신의 연인이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 주인공은 아마 원하지 않는 이별을 맞이 할 꺼라 예상했을 것이다. 헤어짐과 동시에 그녀는 입맛을 잃는다. 우리는 왜 좌절하고 절망하면 식욕을 잃는 걸까? 

 사랑, 이별, 그리고 수많은 감정들을 그녀는 음식의 맛으로 표현한다.고독이라든가 슬픔 혹은 기쁨 같은 것은 요리 재료로 표현 할 수 있다면, 고독은 바질이다. 기쁨은 사프란이다. 슬픔은 먼 데까지 향이 처지는 까슬까슬한 오이다. 31쪽 한쪽은 원하고 다른 한쪽은 원하지 않는 일. 나는 그게 슬픔일 거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말은 알지 못하고 아직은 어떤 음식으로도 표현해낼수 없다. 슬픔에 대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은 그 게 매우 개인적인 감정이라는 점이다. 84쪽 무척 신선한 느낌이다. 보지도 듣지도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의 레시피를 따라 읽어가며 머리속으로 상상하는 즐거움을 준다. 식욕과 성욕, 그 세밀한 표현은 입에 침을 고이게 하고 욕망을 불러온다.
 
 우리 몸에 시각을 제어하는 유전자는 네 개뿐이지만 후각, 미각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천 개도 넘는다. 그러나 그 천 개는 네 개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질 수도 있다. 16쪽 혀에 닿는 순간 사라지는 맛, 그 맛을 기억해내려는 노력. 사랑과 요리에 대한 신비한 비유와 비교는 마치 사랑은 요리다라고 사전에 국한되어진 느낌까지 받게 한다. 요리사인 그녀는 마지막으로 떠나간 그에게 마지막 성찬을 준비한다. 끔찍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증오와 욕망의 절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의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는 노력인지 모른다. 

 부엌에서 중요한 건 거기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가인것처럼 요리를 할 때 중요한 건 그 음식을 먹을 대상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미각,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 감동시킬 수 잇는 것, 그리고 다시 그것을 찾게 만드는 것. 88쪽 매일 매일 음식을 만드는 많은 사람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사랑이 완성되어지는 곳이라 감히 말하고 싶은 곳. 조경란은 '혀'라는 제목을 썼지만 이 책을 읽는 나에게 이 책은  커다란 부엌을 떠올리게 한다. 슬픔의 맛은 정말 오이같은 것일까? 혀끝에 닿자 마자 달콤하고 황홀함이 몰려오는 그런 맛을 가진 사랑을 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맛난 밥을 지어 나란하게 식탁에 앉아 밥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어날 수 없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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