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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리의 트렁크
백가흠 지음 / 창비 / 2007년 8월
평점 :
문학이라는 장르에 있어 글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막상 수많은 책들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망설임 없이 선택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싶다. 다른 이들의 추천을 받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백가흠 이라는 작가에 대해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뛰어난 작가라고 놓치지 말라고 한 기억이 남아있는 듯하지만, 그를 기억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독특한 이름때문이다.
9편의 단편을 선보인다. 읽을수록 뉴스를 보고 있는 착각에 빠진다. 우리 세상을 흔들어 놓았던 경악스러운 뉴스, 텔레비젼을 끄고 싶었던 아니 채널을 돌려버렸던 뉴스들이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백가흠 그는 왜 이런 작품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작품을 통해 알리고 싶은 것은 잃어버린 우리의 양심일까? 단지 문학일지 모른다. 그저 소설에 불과한 이야기. 그러나 그가 이런 소설을 쓴 동기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서민을 우롱하며 물건을 강매하는 방문판매의 또 다른 모습을 그린 장미빛 발톱, 동성애를 떠올리게 하고 정체성의 혼돈으로 인한 혼란이 독자에게 이어지는 웰컴, 베이비! 와 로망의 법칙,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아이를 방치하고 반대로 아이를 갖을 수 없어 아이를 유괴하는 이야기를 다룬 웰컴, 마미! 평범하게 살기를 소망했지만 하루 하루가 너무 버거운 사람들은 삶을 비관하여 자살로 이르고 이웃들을 속이고 마는 일상인 조대리의 트렁크, 건강한 청년이 한 순간 장애인이 되어 돌아오고 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자기만의 방에 갖히게 되는 루시의 연인, 노인 문제와 가출 청소년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는 매일 기다려, 사랑이란 이름으로 휘두르고 있는 근절되지 않는 폭력을 소재로 한 사랑의 후방낙법, 굿바이 투 로맨스.
어느 하나 아름답거나 즐겁다고 말할 소설은 없다. 물론 이야기의 구성은 탄탄하고 재미있다. 다만 소설이 살아 숨쉬는 옥탑방의 작은 방, 인식하지 못하는 지하방, 철거가 되고 있는 후미진 동네, 과거의 추억만을 간직하고 있는 오래된 건물, 골목골목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진 공간들이 말해주듯 모두 변두리의 삶이다. 집을 나왔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상처를 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마치 실존의 인물인양 느껴진다.
작은 여관으로 연결되는 월컴 베이비, 조대리의 트렁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린 부부는 아이를 낳았지만 책임감도 없고 생며의 소중함도 모른다. 그들이 유기한 기형아가 여관에서 일하는 한 남자에 의해 잘 양육되어지기를, 여관에서 자살한 조대리의 손님이 트렁크에 남긴 노모를 조대리가 잘 부양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작가의 마음이며 우리 사회에게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뉴스에서 보여지는 것들을 다시 소설에서 만났을 때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소설속에서 그려진 삶은 미화된 모습일 수 있다. 실제는 더 비참하고 더 악조건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저 소설이었다면 편하게 만날 수 있었을 턴데, 마음이 무거워진다. 백가흠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진정 그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절망에서 찾는 희망, 불편하고 일그러진 사회의 자화상을 꼬집고 싶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