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인생 - 2002 제2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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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한 장면처럼 소설의 멋진 구절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인생이 장밋빛으로 묻들기를 바라기도 할 것이다. 꿈속에서라도 앞으로 펼쳐질 사랑과 인생의 행로가 장밋빛으로 가득하다면 얼마나 황홀할지 그 꿈에서 아마도 깨고 싶지 않은 순간이리라. 2002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정미경의 이 소설은 다른 작품을 다 읽고서 뒤늦게 이렇게 만났다.

제목에서 풍기듯 조금은 속물적이고 통속적인 연애소설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미경이라는 작가를 아는 이라면 모두 느꼈을 듯이 무척 고급스러운 글로 쓰인 연애소설이라 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광고계라는 배경을 중심으로 그 안에서 만난 네 남녀의 사랑은 원하는 방향이 모두 다르다.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민, 푸드 스타일리스트 정애, 광고 기획을 하는 영주, 그리고 민의 남편. 민을 사랑하면서도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하지 않았던 영주는 자신을 향해 적극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정애와 결혼을 하고도 민을 만나왔다. 

서로 다른 곳을 향한 사랑의 시선은 한 순간 갈라져 버리는 유리처럼 되고 만다. 서로 한 공간에 산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을 나누지 않는 부부가 되고 민은 자살을 하고 만다. 지극히 뻔한 스토리를 가진 소설이지만 이 소설이 빛나는 이유는 단연 배경이 되고 있는 광고와의 적절한 조화 때문이다. 광고라는 것은 진실보다는 허구나 과장으로 가득하다. 메이트업 아티스트지만 민낯으로 다니는 민, 방송에선 사랑의 요리를 만들어 내지만 정작 남편을 위해 자신을 위한 사랑의 요리는 할 수 없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정애, 30초 짧은 순간에 세상 모두를 만족시키고 흡족시키지만 자신의 아내를 이해시키지 못하는 영주의 모습이 그러하다.

모두가 건조한 삶을 살고 있다. 광고처럼 빛나는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 화려한 마지막 광고를 향한 그들의 몸부림처럼 자신의 인생에 있어 사랑을 위해 몸부림치지만 부서지고 만다.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그 손을 알아보지 못하는 영주에게 지쳐버린 정애, 사랑을 지키고 싶었기에 죽음을 택한 민, 그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영주, 이들 모두 메마른 정서의 소유자들이다. 우리의 모습은 과연 이 주인공들과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미경은 이 불륜을 아주 우아하게 묘사한다. 마치 민과 영주의 사랑이 장밋빛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갈하면서도 수려하다.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이 아주 많다.

[살아간다는 건 그 무언가를 위해 날마다 존재의 일부를 내어놓는 일이다. 79쪽] 매일 매일 우리는 자존심을 내놓기도 하고 때로는 철면피가 되기도 하지 않는가. [아무래도 삶이란 정색을 하고 저울질하기엔 너무 무거운 어떤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무거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여행을 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소비한다. 그리고 절대로 상처받지 않을 거짓 사랑에 짐짓 빠져보기도 한다. 140쪽] 삶이란 저울의 양 접시에 우리는 무엇을 올려 놓고 싶을까? 과연 그것은 욕망, 명예, 부, 사랑 중 어느 것일까?

우리네 인생은 불륜이 남긴 깊은 상처가 보여주듯 장미빛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저 멀리 장밋빛 인생이 있지 않을까 하며 살아가는게 또한 우리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과대포장인 줄 알면서도 광고를 보고 선뜻 물건을 사게 되는 실수를 범하면서도 말이다.


이 책에는 이 소설 외에 '결혼기념일' 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물적이면서도 이중적인 모습과 약한 내면을 아주 소름 돋게 표현했다. 긴 호흡으로 만난 '장밋빛 인생' 뒤에 만나는 짜릿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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