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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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누구는 잘 울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잘 운다. 너무 많이 울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눈에서 흘러내리는 그 짯만이 때로는 내 입술에 달콤하게 닿기도 한다. 우리의 감정을 담은 눈물.

낯선 소설이다.  정말 낯설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 또한 익숙하다. 고교시절 든든한 동성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내 말을 들어주고 나를 위로하고 나를 바라봐주는 중성적 이미지의 친구와 이 책은 정말 닮았다. 소설가 박민규가 말한대로 누구도 모르게 오직 나만이 <그녀>를 읽고 싶은 마음이라는 글에 동감한다. 날카롭게 거침없이 독소를 뿜어낸다. 그 독소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강한 외침이고 강한 방백이다. 

8편의 단편은 시원스럽고 구성진 목소리로 연극 무대에 홀로 선 천운영의 방백들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관객은 독자이며 세상이다.  아직은 낯선 그녀의 글들. 그러나 곧 우리는 그녀에게 익숙해질 것만 같다. 소설속 등장인물들은 여자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물론 남자를 화자로 두고 남자의 시선으로 쓴 소설(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내가 데려다줄께)도 있지만 그 속에서도 여자의 존재는 무척 큰 의미를 둔다. 변화하는 세상이지만 아직도 약자이고 상처를 안고 사는 여자들속에 당당해지려 희망을 보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녀의 눈물 사용법>

눈물을 흘려야 할 때 울지 않음은 독함으로 보여진다. 슬픔이 가득해온 집, 태어나자 마자 떠난 동생을 잃고 힘들어하는 가족, 그리고 그 동생의 영을 껴안고 살아가는 주인공. 살아가는 순간 순간 눈물을 소진할 만큼 힘들게 살아온 여자들, 할머니를 배신한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유방을 절제한 엄마도 그리고 그녀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죽은 동생을 위한 위령제를 하면서 그제서야 진짜 눈물을 흘리는 주인공. 허위의 눈물이 아닌 진심을 담고 마음을 주었을 때 비로소 참 눈물이 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알리의 줄넘기>

읽고 있으면서도 알리가 여자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여자라는 확인을 하는 글을 읽을 때까지. 알리 라는 이름에는 희망이 있다. 혼혈아로 살아온 아버지가 그녀에게 지어준 이름, 알리. 알리도 울지 않는다. 아빠는 집을 나갔지만 그녀는 할머니와 고모와 함께 행복하다. 결국은 치매에 걸린 그녀의 할머니는 제니 라는 이름으로 즐겁게 죽음을 맞이한다. 잘나가는 동시통역사인 고모가 바라는 사랑은 우리가 되는 것이다.  혼혈아인 가족들에 대한 죄의식을 가진 그녀는 파키스탄 남자와 결혼을 한다. 알리는 이제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그래서 우리를 만든다.
[ 그래서 나는 지금 줄넘기를 하나 더 사러 하는 것이다. 줄넘기를 사면 손잡이에 더블더치를 할 '우리'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넣어야지. 나는 지금 '우리'를 만나러 간다. 103쪽]

<내가 쓴 것>

소설가이며 교수인 나는 학생들의 글에서 나를 본다. 타인을 주인공으로 글을 쓰던 그녀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놓고 바라본다. 소설 속 세가지의 소제목으로 그녀는 각기 다르게 보여지며 또 하나가 되기도 한다. 남편을 자살로 몰고간,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졌었고 학생들에게 깐깐한 늙은 여교수이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죽어 먼길을 떠나 어디엔가 도착해야 한다면 내가 쓴 소설 속으로 들어가겠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기억 저편의 그림 속으로 가는 과정일 테니까. 그러니 이것이 누가 쓴 것이든 태우지 마라. 내가 쓴 것, 그 속에 내가 있다.192쪽] 이 글은 어쩜 천운영의 고백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글 속에 그녀가 있다.그녀가 숨쉬고 있다.

<후에>

언니와 나의 대화형식으로 내용이 묘사된다. 상황 설명없이 그저 쉼 없이 쏟아지는 말들에서 점점 글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쓰레기가 가득하고 학교에도 안가고 방치되어 사는 자매와 엄마에게 어느 날, 다가온 방송 카메라.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고 엄마는 치료를 받으러 자매 곁을 떠나고 남아있는 자매들은 그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기다린다. 그러나 세상의 관심은 잠시뿐. 그것이 우리의 이중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꼬집고 있다.[다른 사람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아. 하지만 말이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것보다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이 더 나쁜 일인지도 몰라. 눈길조차 주지 않는 건 무시하는거잖아.(중략)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우리처럼 남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을 한다는 건 몇 배나 더 어려운 일이지. 227쪽]

늙음과 젊음을 남편과 아내로 비교하고 18살 소년의 등장으로 참되고 숭고한 아름다움이 과연 젊음에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꿈과 현실, 이승과 저승, 진실과 거짓을 몽환적으로 그려낸 '내가 데려다줄께'에서는 권력과 힘으로 무언의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의 모습을 그려냈다. 한 가족이지만 약한 여성을 강한 작은 아이로 상대적을 강한 남성을 거대한 아이로 대조시켜 표현하고 그 작은 아이가 가진 상처를 그 남자라는 특정인물을 만들어내 끌어안아주고 있는 읽으면서도 너무 슬픔 소설 '노래하는 꽃마차', 내면의 아름다움이 아닌 허위의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 여성의 또 다른 자화상을 그린 '백조의 호수' 도 무척 강한 인상을 남겼다.

소설속 주인공들인 여성들은 때로는 모호한 중성적인 이미지로 정체성의 혼란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것은 남성성으로 표방되는 세상에서 아직도 고통속에 사는 여성들의 삶, 이방인의 삶, 아웃사이더 삶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한정적인 공간(소설 속에서는 장롱이 많이 등장한다.)에 숨어들어 그 속에서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나 점점 그들은 문을 박차고 나온다. 알리가 꿈꾸는 '우리'가 함께 하는 세상을 향에 얼굴을 내밀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소리가 '천운영'이라는 소설가의 글을 통해 세상에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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