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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의 긴 여행 ㅣ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유디트 헤르만 지음, 우영주 옮김 / 마르코폴로 / 2026년 3월
평점 :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 『집으로의 긴 여행』은 이상한 소설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짧은 분량의 소설은 이렇다 할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묘사와 풍경이 전부라 말할 수 있다. 뭔가 일어날 듯하면서도 일어나지 않는 묘한 긴장감. 선뜻 명확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쉽게 수월하게 읽히지도 않았다. 책을 덮고 나서야 자꾸 소설 속 인물이 생각난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어떤 이름으로도 호명되지 않은 ‘나’의 하루를 상상하게 된다. 이런 게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이 지닌 특유의 분위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계속 그의 글을 읽는지도.
소설은 30년 전의 기억으로 시작한다. 담배 공장에서 일하며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반복되는 ‘나’의 무료한 일상에 찾아온 기회. 그것을 선택했을 때 기회가 될 수도 있었으리라. 그것은 한 남자의 제안이었다. 자신을 마술사라 소개하는 남자는 ‘나’의 키가 적당하다며 자신의 상자에 적합하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톱질당하는 젊은 여자, 도우미가 필요하다고. 그저 누워있기만 하면 되고 빨간 원피스를 입기는 해야 한다고. 고민하던 ‘나’는 마술사가 알려준 집으로 찾아간다. 마술사와 그의 아내를 만나 설명을 듣고 직접 상자에 들어가 몸을 웅크려본다. 마술사는 크루즈 오로라호를 타고 싱가포르로 떠날 거라며 7일 후에 만나자고 한다.
매일매일 조금씩 짐을 챙겨 공장에는 말하지 않고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떠나지 않았고 ‘오티스’를 만나 결혼했고 딸 ‘앤’을 낳았다. 앤은 열여덟 살이 되자 집을 떠났고 나는 오티스와 이혼했다. 그리고 지금은 오빠 〈사샤’가 있는 동네에서 오빠 가게에서 일을 돕고 있다. 오빠와 한 집에 사는 건 아니고 혼자 지낸다. 옆집에는 ‘미미’라는 여자가 산다. 한때 오빠와 사귄 여자. 조각가이자 화가인 미미는 세 번의 결혼을 했지만 실패했다. 미미의 부모는 돼지 농장을 운영한다. 남동생 ‘아릴드’는 가족이 아닌 여자를 선택했는데 여자가 떠나고 농장으로 돌아왔다. 60을 바라보는 오빠는 스물한 살의 여자친구 ‘니케’가 있다. 오빠 입장에서는 애인이고 니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이야기로 시작했던 소설은 사샤, 미미, 니케, 아릴드가 등장하며 그들의 이야기가 합쳐지고 확장된다. ‘나’는 혼자 지내면서 앤의 연락을 기다리며 일상을 오티스와 공유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은 미미의 등장으로 달라진다. 혼자 지내는 집의 천장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 그 짐승을 잡기 위해 아릴드가 덫을 놓지만 잡히지 않는다. 거침없이 자유로운 미미, 뿌리가 어디 있냐고 묻는 미미와 함께 바다에 나가 수영을 한다. 아릴드의 농장에서 그와 밤을 보내기도 하고 사샤의 집에서 니케를 게임을 한다. 니케가 과거 어린 시절에 상자에 갇혔었다는 말을 듣는다. 니케가 겪은 일은 방임이었고 가정 폭력이었다. 사샤는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지만 ‘나’는 집으로 간다고 말한다. 오빠가 생각하기엔 집이라 할 수 없는 그곳으로.

나는 부엌에서 나와 정원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길의 가로등은 이미 깨졌고, 모두가 잠들었다. 하늘은 높고 별이 가득했다. 포근한 밤이었다. 마을을 나와 어두운 시골길을 따라가면, 들판에 묵직하게 서 있는 외딴 농장이 보였다. 이 세상은 나의 세상이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여기 있기 때문에. 그게 전부다. (83쪽)
분명 닫힌 현관문이 열려 무섭고 천장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안전하다 할 수 없는 곳이지만 나에게는 집이다. 옆집의 미미도 있고 친구라 할 수 있는 아릴드도 있다. 오티스와 앤의 기억이 있는 그곳을 떠났다. 떠날 수밖에 없었다. 오티스의 집은 물건으로 가득 찼고 앤과 살았던 집에서 앤은 떠났으니까. 어린 시절에도 그런 공간이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왔지만 집을 들어갈 수 없었던 시절.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엄마. 열쇠가 없던 사샤와 계단에서 기다려야만 했던 그때에도 집은 없었다.
나를 비롯한 미미, 사샤, 니케, 아릴드도 다르지 않았다. 저마다 상실을 경험하고 상처를 지녔고 고독하게 지내고 그들만의 집으로 돌아왔다. 불운과 불행이 익숙한 고립된 섬처럼 살았지만 서로를 만나 연결되고 관계를 맺는다. 아직은 서툴고 위태로운 듯 보이지만. 떠났다 돌아올 수 있는 곳, 나는 앤에게 그런 곳이고 싶다. 어쩌면 앤에게는 여행 그 자체가 집일 수도 있다. 억지스럽게 의미 부여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쁜 소식이 없는 평화로운 신문을 읽으며, 매일 아침으로 완숙 달걀 세 개를 먹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111쪽)
거칠고 쓸쓸한 분위기로 가득한 소설이지만 그 끝에는 다른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작은 찻잔의 온기,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다 내음, 점점 가까워지는 자전거 소리, 그리고 마침내 ‘나’를 부르는 기다리던 목소리 같은 것들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