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의 반응 때문인데 나쁜 일의 경우 그렇게까지 속상할 일인가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기준이 다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일에 계속 신경을 쓰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보면 그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는 건 어렵고 이해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니까. 그럼 사랑하는 일은 어떨까? 상대의 모든 걸 품어주고 견디는 게 사랑일까. 사랑하기 때문에 그 모든 걸 감수할 자신이 있는 것일까? 애거서 크리스티의 당편소설 『장미와 주목』속 ‘이저벨라’가 선택한 사랑은 도무지 모르겠다. 그녀가 상대의 무엇에 반했는지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장미와 주목』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맞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심연을 채우고 지배하는 게 무엇인지, 타인에 대해 안다는 건 얼마나 무지한가 스스로 묻게 된다.


소설은 죽어가는 누군가가 화자인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소식으로 시작한다. 기억에도 없는 이름이었다. ‘존 게이브리얼’, 그를 중오하는데 마지막 순간에 나를 찾다니. 존 게이브리얼과의 만남은 호기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못생긴 사기꾼의 최후를 지켜보고 싶은 이상한 욕망 말이다. 존 게이브리얼의 죽음의 순간은 그들의 첫 만남을 불러온다. 과거 나는 사고로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와 한 몸인 상태로 런던을 벗어나 형수 테리사의 의 고모가 유산으로 물려준 집이 있는 세인트 루에서 생활했다. 형수는 많은 정치 행사에 참가할 생각이라고 했고 그와 관련된 이들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 지역의 보수당 대표로 나선 주자는 존 게이브리얼이었다. 그는 대단한 이력의 소유가는 아니었지만 선거를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세인트 루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는지 아는 사람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였다. 존 게이브리얼에게 나는 완벽한 청자였다. 모든 이야기를 쏟아냈고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나를 방문한 다른 이들은 안타까운 시선과 연민의 말들을 전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은 달랐다. 삶을 포기하려고 수면제를 모으고 있던 나를 한눈에 알아본 사람은 귀족 아가씨 이저벨라였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었기에 그랬을까. 나는 이저벨라와의 만남이 즐거웠고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모아둔 죽음이 아닌 삶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녀를 좋아하고 어쩌면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그러나 그녀에게는 정혼자가 있었다. 그녀는 세인트 루의 성에 노부인들과 지내며 전쟁에 참가한 연인 사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면 결혼을 할 거라고.


나와 이저벨라는 선거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그 중심엔 당연 존 게이브리얼이 있었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 그가 술주정뱅이에 폭력을 쓰는 남편으로부터 한 여인을 구해준 일은 일파만파 커졌다. 사람들에게 둘은 내연관계처럼 보일 수 있었으니까. 여인은 자신이 존 게이브리얼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속상해하고 자책했다. 나에게도 찾아와 조언을 구했다. 보수당의 승리를 위해 세인트 루의 많은 이들이 의견을 냈고 결국엔 존 게이브리얼의 승리는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저벨라가 기다리던 정혼자가 왔다. 이저벨라 정말 잘 어울렸다. 존 게이브리얼은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저벨라에게는 행복한 결혼생활만 남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런 결말은 도착하지 않았다. 존 게이브리얼과 이저벨라가 떠났으니까.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존 게이브리얼은 귀족에 대한 반감으로 이저벨라를 꺾으려 했다는 것과 이저벨라는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나에게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의술의 발전으로 나는 휠체어에서 벗어났고 우연한 장소에서 존 게이브리얼과 재회한다. 그를 통해 이저벨라가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예상대로 비참한 환경이었지만 이저벨라는 아니었다. 예전과 같은 분위기였다. 정식 결혼을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저벨라가 세인트 루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놀라운 건 그녀가 존 게이브리얼을 대신해 총에 맞아 죽었다. 맨 처음 만났을 때, 죽음이 무섭다고 했던 그녀였다. 선거 행사의 만남에서 그를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그를 모른다고 했던 그녀였다.


“전 그를 몰라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죠. 누군가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른다는 건 끔찍한 일이에요.” (235쪽)


분명 이저벨라는 존 게이브리얼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를 알지 못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맞는 말이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내 감정과 내 입장에 우선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사랑은 복잡하고 삶도 마찬가지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필명 ‘메리 웨스트매콧’으로 쓴 소설에서 중점을 둔 것은 인간의 내면이었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이 얼마나 어려운지. 자신이 지난 생을 돌아보는 입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형수 테리사가 짚어주는 이 부분이 소설의 핵심이다.


“그녀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죠.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건 ㅡ 그녀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단순하기 때문이었어요 ㅡ 무서울 정도로 단순했죠. 그녀는 언제나 본질만 생각했어요. 당신은 이저벨라가의 인생이 짧게 끝나버렸다고, 일그러지고 부서져버렸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난 그것 자체로 완전한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 (347쪽)


『장미와 주목』의 화자인 휴 노리스가 이저벨라의 삶을 통해 자신의 그것을 마주한 것처럼. 오 분이나 천년이나 의미는 똑같고,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이 소설이 T.S 엘리엣의 『네 개의 사중주』 중 “장미의 순간과 주목의 순간은 같다”에서 가져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미 다른 소설이 그러했듯 재미있게 읽었지만 가슴 한 구석을 지나는 날카로운 무언가가 있다. 가장 사랑하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다는 이저벨라의 모습은 남편과 가족이 전부였고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 여겼던 『봄에 나는 없었다』에서 상실을 느꼈던 ‘조앤’, 가장 든든한 조력자였던 엄마의 죽음와 불행한 결혼을 통해 성장하는 『두 번째 봄』속 ‘셀리아’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인간 심연에 대한 사유, 애거서 크리스티의 통찰이 놀랍다.


조앤은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로드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참된 진실보다도 유쾌하고 편안한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는 편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그래야 자신이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몰랐다. (『봄에 나는 없었다』, 중에서)


사람이 자라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두려운 일인가. 사람에게 다른 어떤 순간보다 더 자기 자신다운 특별한 순간이라는 게 있을까? (『두 번째 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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