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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 - 백은선의 8월 ㅣ 시의적절 20
백은선 지음 / 난다 / 2025년 8월
평점 :
시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시인은 이런 단어를 어디서 찾는 것일까 놀라곤 한다. 그냥 보통의 말인데, 나도 알고 있는 말인데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골몰하고 골몰해서 도달한 단어라서 그럴까. 아니면 많이 쓰고 많이 읽어서 그럴까. 어쩌면 나는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알고 싶고 알려고 애쓰더라도 말이다.
백은선 ‘뾰’도 그렇지 않은가. 나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고 이 책을 통해 기억으로 남을 ‘뾰’. 백은선의 시집을 읽지 않았기에 그가 닿으려는 시의 마음이나 시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 『뾰』를 통해서 시가 그에게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은 정도다. 모르면 어떻고 알면 어떤가. 책을 읽는 순간에는 백은선과 백은선은 원하지 않았으나 엄마의 재능을 닮은 아들을 일상을 그릴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8월의 바다와 술에 취한 백은선의 취한 밤의 한 조각을 그러잡은 느낌이라고 할까. 지금은 사라진 밤과 충동적인 아름다움과 지독한 슬픔에 대해서.
이 책 전 만난 백은선의 산문에서도 느꼈지만 엄마 백은선과 시인 백은선은 선명한 경계를 원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다 속이 상한다. 아이와 살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쓰면서도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에 지치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어떻게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려 애쓰는 그는 분명 좋은 엄마다. 그 말을 해주고 싶다. 병에 가득 채워 밤마다 한 잔씩 따라 마실 수 있도록.
시는 빛으로 이루어진 층계다.
시는 어둠 속에서 펼쳐보는 일기장이다.
시는 가장 처음 배운 외국말이다.
시는 불속에서 녹아버리는 뼈
손끝에서 터지는 한 발의 총성
노래를 듣는 순간 떠오르는 과거의 풍경이다.
시는 모든 것이다. 사물의 희미한 윤곽, 생물의 동력, 우주가 부풀어오르는 리듬이 바로 시다. (8월 22일 산문「빛의 층계 끝에 다다를 때」 중에서)

그가 쓴 시 길고 긴 시는 너무 버겁다. 그러나 시를 원하는 그의 뜨거운 갈망은 감격스럽다.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것을 말하고 싶은 욕망, 깊고 진하게 뻗어가는 모양, 아니 사고할 수 없는 어떤 것, 아무도 모르게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것들을 채집하는 그의 노력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함께 말하자고 그는 독자에게 손을 내민다. 잡아줄 이가 없을까 두려워하면서도. 그런 의미에서 이 에세이는 시집으로 묶이지 않은 하나의 시집이라 여겨도 좋겠다.
뾰
뾰
뾰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는 섬과 바다
사랑스러운 돌고래들
몇 년이나 헤매고 나서 찾았어
입과 귀의 모든 것
위로는 젬병이라 차라리
잘라버리고 싶었던 것들
남은 평생 단 하나의 단어만 말할 수 있다면
뭘 선택할래?
언젠가 네가 물었고
난 눈을 감은 채
응
하고 답했지
응
(8월 18일 시 「뾰」, 일부)
어딘가 빛이 닿지 않는 숨겨진 응달에는 눈이 아직 남았다. 빛으로부터 달아나 자신만의 공간에 안착했을지도 모르나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봄빛을 기다리고 그 너머의 여름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이런 문장 앞에서 사나울 정도로 격렬한 무언가를 품는다. 시인은 여름이 끝났다고 생각한다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할 그 모든 여름과 8월이 그에게 영원한 여름이 될 거라고.
찬란한 파동, 펼쳐지는 물의 계단, 층층이 밟고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이 있을 것만 같고. 사계절이 한 사람의 삶과 같다면, 여름은 청춘 같다. 물론 청춘이란 말 안에 봄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내 삶의 여름은 이미 끝났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만약 내게도 여름이 남아 있다면 그건 팔월의 끝, 마지막 빛 같은 것이 아닐까. (8월 31일 일기 「마지막 여름은 나와 함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