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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ㅣ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평점 :
세상의 모든 일은 경험하기 전까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안다고 여기고 확신을 가져도 실제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험자는 충고하고 조언한다. 자신의 경험이 대단한 영향력을 지닌 것처럼. 한편으로는 경험하지 않았기에 분별력이 정확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감정에 대해서는 섣불리 경험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사랑, 행복 같은 것들은 추구하는 가치와 기준이 다르니까.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시대적 배경과 문화를 별개로 결혼이란 무엇이며, 행복한 결혼이란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첫 만남의 좋지 않았던 인상 때문에 서로를 오해하고 돌고 돌아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 완벽한 로맨스이자 연애 소설이지만 그게 전부일까.
딸에게는 재산을 상속하지 않는 불합리한 상속 제도로 인해 원하지 않든 결혼을 목표로 삼다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그래서 딸 다섯을 둔 베넷 부인은 어떻게든 딸들의 남편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근처로 재산이 많은 청년 빙리가 이사를 오면서 더욱 목표는 분명해졌다. 첫째 제인과 빙리는 제법 잘 어울리고 베넷 부인이 보기에 둘의 결혼은 시간문제로 보였으니까. 문제는 제인이 아니라 둘째 엘리자베스였다. 제인에 비해 미모가 약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엘리자베스에게도 신경이 쓰이는 청년이 있다. 빙리의 친구인 다아시. 부유하고 명망 있는 가문의 상속자지만 오만한 태도로 일관한다.
연애 소설의 특성상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만 소설 초반의 둘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다이시가 어떤 인물인지, 독자도 혼란스럽다. 물론 엘리자베스에게 호감을 느끼고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는 건 확실하지만 말이다. 엘리자베스가 그를 오만한 사람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그가 제인과 빙리의 결혼을 반대한다는 것,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어려운 사람을 힘들게 했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게 사실이라면 엘리자베스가 그를 미워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이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에 엘리자베스에게 고백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모두가 예상하듯 답은 거절이다. 엘리자베스가 다이시의 진심을 알아갈 시간이 없다. 동생 리디아가 남자와 도망을 치는 일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그 상대는 한때 엘리자베스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이시의 과거에 대해 알려준 남자 위컴이다. 소설이나 밖이나 남녀의 사랑은 예측할 수 없고 돌발적이다. 이 부분이 나는 제일 놀라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와 다이시의 관계 회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복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제인과 빙리, 엘리자베스와 다이시의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지면서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지만 과연 행복한 결혼이라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아들이 없는 베넷 부부의 먼 친척이자 상속자인 콜린스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하자 흔쾌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베넷 부인과 엘리자베스의 거절로 콜린스와 결혼하는 샬럿의 생각은 그 시대의 표본일지도 모른다.
결혼에서 행복은 순전히 운에 달린 거니까. 당사자들이 각자 상대의 성격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든가 처음부터 둘이 꼭 닮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남들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단 말이지. 살다 보면 어차피 충분히 달라질 테고, 그래서 또 남들만큼 속앓이를 할 테니 말이야. 그러니까 오히려 앞으로 평생을 함께 보낼 사람의 결점은 잘 모르면 모를수록 좋은 거야. (46쪽)
결혼은 언제나 그녀의 목표였거든요. 재산은 적고 교육은 잘 받은 젊은 여자에게는 결혼이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어요, 그러니 행복을 얻을 가능성이 아무리 불투명해도, 결혼은 궁핍으로부터 지켜주는 가장 쾌적한 보호 수단이 되어주었지요. (213쪽)
샬럿의 입장에서 목표하는 바를 이뤄주는 상대가 등장했으니까. 아니, 현재의 누군가도 샬럿의 생각에 동의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결혼은 어렵고 알 수 없다. 평생 독신이었던 제인 오스틴이었기에 섬세한 감정 표현과 결혼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들려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재밌게 읽은 소설이다. 아름다운 자연 광경과 대저택의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는 제인과 피아노를 치는 엘리자베스를 지켜보는 다이시를 상상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