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었다. 예보는 정확하게 맞았다. 마치 알람을 맞춰놓은 것 같았다. 그치는 시간도 그랬다. 비가 올지 몰라 우산을 챙기는 게 아니라 반드시 우산을 가지고 외출을 해야 하는 걸 알려준다.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다. 우연의 순간에 맞닥뜨리는 감정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었다. 비 때문에 챙기지 못한 것들을 할 여유를 준 것일까. 어제의 하늘과는 다른 하늘이다.
장마의 나날을 보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비를 좋아하지만 비가 지닌 무서움을 잘 안다. 비가 몰고 오는 불쾌지수를 잘 다스려야 한다. 첫 번째 준비로 에어컨을 새로 장만했다. 장만이 아니라 선물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 누나를 위해 동생이 선물한 시원함이다. 공간의 재배치가 필요했다. 덕분에 책장을 정리했다. 이번에도 책을 버렸다. 좋아했지만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책, 읽겠다 다짐하며 버리지 못한 책, 그리고 CD를 정리했다. 갖고 있는 게 많지 않았지만 막상 버리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선물 받은 게 많았다. 고마운 마음을 정리하는 것 같은 미안함이 몰려왔다.

책장에는 공간이 생겼다. 드립 커피와 몇 권의 책을 샀다. 버리는 만큼 맞춰 들이는 건 아니니까. 김애란의 단편집 『안녕이라 그랬어』, 『소설 보다 : 여름 2025』는 구매 계획이 있었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별의 시간』은 고민하다 구매했다. 왜냐하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책을 읽다 만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글이라는 건 알겠는데 어려웠다. 친애하는 이웃 님의 추천으로 도전하기로 했다.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알 수 없으니까.
비가 지나간 아침은 고요하다. 바람도 없지만 시원하다. 이 시원함이 곧 사라질 걸 알기에 더욱 달콤하다. 다시 비가 오기 전 해야 할 일은 세탁기 돌리기. 게으른 마음을 달래며 해야 할 일이 많다. 주말의 아침이 분주하다. 모두 장마의 나날을 안전하게 지냈으면 한다. 눅눅한 일상이 계속되겠지만 보드라운 시간도 이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