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트리플 31
장아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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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험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이해받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귀신을 봤다거나 반려동물이 말을 걸었다거나. 바라고 바라는 마음이 헛것을 봤거나 들었다고 말할 게 뻔하다. 그뿐인가.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일과 맞닥뜨렸을 때 그것은 오롯이 혼자만의 것이 된다.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꺼내는 순간은 쉬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오긴 올 것이다. 장아미의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속 이야기처럼.


장아미가 들려주는 세 편의 이야기는 기이하면서도 슬프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시대가 변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고, 무너지고 붕괴되는 자연을 안타까워하는 마음 때문이다. 표제작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1년에 한 번 음력 7월 보름인 백중(百中)에 은비는 죽은 친구 재희를 만난다. 그러니까 귀신이 된 친구를 본다는 거다.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소설처럼 1년에 단 한 번 죽은 이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날의 일들이 나를 위험에 빠지게 만든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재희는 은비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다 은빛 방울 키 링을 건네고 사라진다. 그건 은비가 재희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은비는 산모퉁이에서 새어 나온 불빛을 보고 걷다가 마주한 금줄을 넘는다. 한밤중에 펼쳐지는 야시장, 그곳에서 은비는 이상한 사람을 만나고 그림 속에 갇히고 만다. 은비를 노리는 건 인간이 아닌 귀신이니까. 어디선가 나타난 재희는 은비에게 고양이라고 말하고 은비는 정말 고양이가 된다. 위험에서 빠져나온 둘은 은비의 집 앞에서 헤어진다.


누군가 궁금할 것이다.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니까. 그 둘을 연결해 주는 존재가 누구일까. 제목에서 짐작했듯 은비가 기르는 고양이 ‘포’다. 원래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재희가 기르던 고양이였다.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존재라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건 아닐까.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에서 죽은 이를 보는 고양이처럼 「능금」에서는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를 보는 이가 등장한다. 죽은 아버지가 남긴 산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능금’이다. 그녀 앞에 부상을 당한 남자 ‘해수’가 등장한다. 처음 보는 해수가 낯설지 않은 능금은 그를 기다렸다고 말한다. 둘은 함께 지내며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해수의 몸은 인간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한다. 해수는 타인을 해하려는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스스로를 사냥하려 한다. 누가 봐도 해수는 괴물이었다.


“사람들은 신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할 거라고 생각하죠. 아뇨, 신은 울어요. 짖고 포효해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도 않죠. 신이 제모습을 드러낸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 게 좋겠지만, 모두 경악하며 달아날 거예요.” (「능금」, 101쪽)

해수가 상징하는 건 무엇일까. 아버지가 절대 팔지 말라던 산의 신령일까. 아니면 인간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파괴하는 자연일까. 과연 해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금 같은 이들은 존재할까. 문득 괴물 같았던 지난달의 산불이 떠오른다. 마구잡이로 산을 깎고 파헤치는 인간의 욕망.


장아미가 그리고 싶은 건 모든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죽음 따위는 아무렇지 않은 그런 세계. 설령 그 모든 것이 실재하지 않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용기와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삵, 직녀, 파도 같은 영적인 존재가 인간으로 변해 만나는 「산중호걸」이 그렇듯 말이다. 소설은 우리에게 당부한다. 다시 만날 세계를 꿈꾸고 바라는 일을 멈추지 말라고.


그래, 여기는 현실이 아니니까. 전혀 다른 질서로 움직이는 세계니까. 그래서 우리가 닿아있을 수 있나 봐.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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