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 창비교육 성장소설 13
보린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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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이라는 시간은 딱 1년만 고생하면 다음으로 나갈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고3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동반하지만 이 시간만 지나면 뭔가 다 해결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냥 고등학교 3학년일 뿐인데 말이다. 강원도 고성의 바닷가 마을에 사는 ‘연우’가 어느 날 큐브에 갇힌 설정으로 시작하는 보린의 『큐브』에서도 마찬가지다. 연우도 고3이다.

이유도 모른 채 투명한 정육면체 큐브에 갇혀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연우를 찾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다. 연우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기력 그 자체다. 잠이 쏟아지고 잠에서 깨면 배가 고프다. 다행인 건 언제나 유부초밥이 있었다. 이상한 건 어디선가 ‘채집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빨간 공, 언제나 같은 자리, 정육면체 한가운데 떠있다. 홀로그램 비슷한 것으로, 연우가 깨어날 때는 투병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모래시계처럼 아래에서부터 빨갛게 차오른다. 가끔 매미 소리를 낸 다음 메시지를 보여 준다. 넌 채집되었다, 근처에 먹을 게 있다, 의식을 통제할 거다, 내용은 딱 세 종류다. 공이 완전히 빨갛게 채워지면 큐브 안팎의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온다. 연우 자신만 빼고. (19쪽)

연우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데 어느 순간 ‘항상성 붕괴……부접합……조사종료……’란 말이 뜬다. 그리고 연우는 다시 교실로 돌아온다. 놀라운 건 연우가 큐브에 갇힌 아니 채집된 시간이 무려 1년이었고 실종 상태였다는 것이다. 돌아온 연우는 일상을 되찾으려 하지만 자신만 빼고 모든 게 달라진 현실을 확인한다. 연우가 좋아하던 해고니는 꿈이었던 서퍼가 아니라 서프 숍에서 일을 하고 다른 친구들도 대학에 갔다. 연우도 대학 입시를 위해 도서관에 다닌다.

연우에게도 변화가 있다. 그건 연우만이 아는 비밀이다. 큐브에 갇혔을 때 채집된 장치와 거기에 복제된 자아인 젤리 곰이다. 작고 귀여운 젤리 곰은 연우가 말을 할 때마다 연우와 같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 목소리는 진짜 연우의 마음 같다. ‘나는 우연우, 너야’라고 말하는 젤리 곰이라니. 이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조금씩 연우는 또 다른 연우인 젤리 곰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연우는 1년 전 해고니에게 하려 했던 고백을 하지만 해고니는 연우가 고성을 떠날 거라며 받아주지 않는다. 연우는 해고니가 좋아서 고성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한다. 아버지도 예전과 다르게 연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한다. 막연하게 대학에 가려고 했던 마음을 돌아본다. 그리고 해고니가 왜 서퍼가 아니라 서프 숍 직원으로 일하는지 왜 바다를 무서워하는지 알게 된다.

연우는 큐브에서 빠져나왔지만 여전히 갇혀 있었고, 1년이 지났어도 지난여름 교실의 공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그때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것도 리셋하지 못한 채, 되풀이되는 과거의 한순간 속에 갇혀 있었다.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알지 못한 채, 해고니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던 그때 그 순간 속에. (178~179쪽)

보린의 『큐브』 는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모른 채 대학 입시만을 위해 살아가는 고3의 고민을 SF라는 설정을 통해 보여준다. 연우가 큐브에서 보낸 1년이라는 시간은 인생 전체로 보면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고3이라는 시간도 다르지 않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위한 고민은 1년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니까. 연우 같은 고3이나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닐 것이다. 여전히 원하는 바를 찾지 못하고 과거의 한순간(큐브)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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