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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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있다면 알고 싶다. 지극히 주관적인 슬픔은 객관화될 수 없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누군가 괜찮냐 묻고 누군가 괜찮아질 거라 말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나야 괜찮아질 수 있다. 아주 천천히, 아주 느리게 말이다. 오롯이 혼자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시간을 돌아보면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안다. 우리가 있었기에, 서로를 지탱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말이다.


매튜 퀵의 장편소설 『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은 그런 소설이다. 그러니까 견딜 수 없어 사라지고 싶은 순간, 현실을 부정하고 나만의 시간으로 도망치는 이를 가만히 지켜봐 주고 기다리는 이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소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다정하고 뜨겁게 안아주는 소설이다. 그들이 같은 상처를 가진 이라면 그게 가능하다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강력한 위로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의 루카스는 마제스틱 극장에서 일어난 참사로 아내 다아시를 잃었다. 소설은 처음부터 슬픔을 공개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는다. 모든 건 루카스의 정신분석을 맡았던 칼에서 보낸 편지로 이어진다. 칼 역시 머제스틱 극장 사고로 아내를 잃은 피해자였다. 그 사건으로 모두 열일곱 명이 죽었다. 도대체 극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은 사건과 칼이 왜 답장을 하지 않는지 궁금증을 안겨준다. 루카스가 칼에게 보낸 편지만을 통해 독자는 짐작할 뿐이다.


루카스에겐 비밀이 있다. 다아시가 천사가 되어 자신의 곁에 있다. 증거도 있다. 아침마다 다아시의 천사 날개 깃털을 모은다. 그건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이다. 오직 칼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다. 루카스의 집에서 같이 지내는 다아시의 절친 질에게도 말해선 안된다. 루카스는 학교에서 상담 교사로 일했지만 사고 이후로 그만둔 상태다. 칼에게 정신 분석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는 게 일상의 전부다. 루카스의 일상은 머제스틱 극장 사고의 가해자 제이콥의 동생 앨리의 등장으로 변화한다. 앨리가 루카스 집의 뒷마당에 텐트를 치고 들어왔다. 앨리 역시 마제스틱 극장 사고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에서 앨리를 상담했던 루카스는 앨리를 내보내는 대신 함께 지낸다.


앨리가 일상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언인가 찾는다. 앨리의 제안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마제스틱 극장의 사고를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머제스틱 극장의 사건을 괴물로 설정하고 괴물을 어떻게 물리치고 나가는지 보여줄 생각이다. 그건 사고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질을 비롯해 루카스의 친구들과 사고 관련자인 마을 사람들이 영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같은 상처를 지녔기에 마을 사람들은 서로 돕는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분담하며 영화를 만든다. 영화는 그들을 연결시켰고 끈끈하게 만들었다.


“그 비극이 일어난 후, 비탄에 젖은 내 일부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괴물처럼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운명에 감염된 사람 같았어요.”


“우리가 괴물로 만든 사람들도 있어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사람들이 던지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따돌림을 받은 사람들. 자신이 너무나 비천한 존재라고 느껴 스스로 소외된 사람들.” (134쪽)


루카스는 이 모든 과정을 칼에게 편지로 전한다. 앨리가 입을 괴물을 깃털로 표현하는 일부터 가장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전한 인물을 설득하는 일까지 하나하나 칼에게 말한다. 루카스는 앨리와 함께 조금씩 나아간다.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 같다. 머제스틱 극장에서 영화 상영회를 할 때 루카스가 연설도 할 예정이다. 질이 끝까지 만류하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루카스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괜찮아질 수 있다고 말이다.


자신의 모든 걸 보여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로 편지만큼 완벽한 게 있을까. 혼자만의 기록인 일기가 아닌 수신인이 있는 편지는 일종의 고백이었고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오래된 상처와 트라우마를 루카스는 칼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 내려놓을 수 있었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인정과 사랑이 얼마나 큰 상처로 남는지 알기에 루카스는 앨리를 보살피고 보듬는 게 가능했다. 상처와 고통의 공간인 머제스틱 극장을 찾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 용기가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더라도 말이다.


매튜 퀵의 『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 아프지만 아름답다. 어둠을 통과하는 소설이다. 어둠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암담하고 온통 칡 흙 같은 어둠의 세계에도 끝이 있다고 말한다. 혼자만 어둠 속에 있는 게 아니라고. 처음엔 약하지만 연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삶은 단단하게 나가가는 거라고. 마침내 마주할 빛을 향해서 말이다.


저 빛 속에 우리가 있어. 이 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와 머제스틱 마을 사람들이.

우리.

우리가 빛이에요.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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