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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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온라인 서점을 클릭만 하면 여기 저기 달콤한 나의 도시가 춤을 추었다. 지인의 선물로 내 품에 온 은수와 친구들은 지금쯤 잘 살고 있을까? 그 사이 그네들은 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고 자신만의 달콤한 도시에서 새로운 집을 짓고 살고 있겠지.
그 도시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쓰여진 이 가을을 들썩이게할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책은 제목과 표지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입술만 동동 떠나니는게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은 진실이 아닐꺼라는 막연한 확신까지 던져준다.
 
정이현의 이 책은 지난해 장편소설보다 무척 밀도가 깊고 시선도 다양하다. 달콤한 나의 도시로 인해 국한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면 이 소설집을 통해서는 아마도 그 폭이 무척 넓어질꺼라는 것은 나만이 가지는 느낌이 아닐것이다.
10편의 단편속의 몇 편들은 내가 지나온 학창시절이 거슬러 올라오듯 많은 부분이 나의 또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어쩌면 그녀의 진짜 이력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되기도 한다.
서른중반을 넘어선 그녀가 만든 이야기 속에 그녀와 같은 연배의 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더 빨려들었는지 모른다.
나의 10대와 책속 그녀의 10대. 나의 20대와 그의 20대. 그리고 이어지는 내가 살고 있는 30대라는 지금의 모습.더 나가 앞으로 살아가야할 그 다음 세대를 포함한 이야기가 퍼즐처럼 펼쳐진다.
실제사건을 소재로 삼은 삼풍백화점과 드러내지 않았지만 거짓이 진실을 뛰어넘음을 잘 표현한 어금니,진실이지만 무기력하게 거짓이 되고 마는 그 남자의 리허설이 가장 기억에 남고 주목할만 하다.
 
삼풍백화점 - 그저 순탄하게 살아왔다고 말하는 나는 삼풍백화점에서 직원으로 있는 R을 다시 만나게 되고 취업준비를 하면서 저녁시간을 R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잦아진다.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될지 그때는 몰랐을 나. 혼자 살고 있던 R에 대하여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또한 알지 못한다. 취업이 되면서 어느새 점점 연락이 멀어지고 사고가 일어나던 날 내가 그곳에서 빠져나오나 마자 백화점은 붕괴된다.
붕괴사건은 금새 잊혀지고 만다. 거짓말처럼. 그곳을 지키고 있는 아파트만이 그 땅을 기억할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다. 부의 상징으로만 여겨지는 강남의 어느 곳에는 화려함에 밀려 살고 있는 무채색의 삶들도 많다. 그 무채색과의 조화에 힘입어 우리는 화려해지고 있음을 가끔 잊고 산다. 정이현이 정말 썼을까? 싶은 느낌이 자꾸 드는 단편이다.


어금니 - 49번째의 생일을 맞는 중년여인에게 닥친 아들의 모습은 이미 썩어질대로 썩어버린 그래서 발치를 해아함이 분명한 어금니과 같다. 모범적이라 여긴 아니 그렇게 믿은 아들은 채팅을 통해 미성년자와 원조교제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 인사사고를 낸다. 아무렇치 않은 듯 교통사고 병실에 누워있는 아들과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나. 재력으로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남편. 셋은 모두 거짓말쟁이가 되고 만다.


그 남자의 리허설 - 시립합창단원인 남자에게도 총망받는 어린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성악을 전공한 남자일 뿐이다. 그에 반해 아내는 뛰어난 연출기획자이며 재력이 든든한 집안을 두었다. 초고속 초고층의 무슨 무슨 아파트는 보안이 철저한다. 남자는 아파트를 나올때 경비의 극진한 인사를 받는다.그러나 남자가 지갑을 놓고 나온 사실을 확인하며 다시 경비앞에 섰을때는 남자는 외부인이며 불청객이 되고 만다. 결국 남자는 키를 받으러 아내에게 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남자는 구차하면서 쓸모없어 보이는 자신없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는 듯 현기증을 느낀다.자신에게 악취가 나는 듯하고 모멸감을 느낀다.

남자가 느끼는 내면의 감정변이와 남자를 둘러싼 시선처리가 무척 잘 쓰여졌다.
나머지 7편의 소설도 무척이나 구성력이 좋다.
이혼한 부부가 기르던 강아지를 놓고 시작된 갈등이 교통사고의 공범으로 마무리되는 타인의 고독, 거짓된 이용후기를 작성하는 일을 하는 여자의 이야기인 오늘의 거짓말,80년대의 중학생의 시선으로 그 시대를 꼬집어 놓고 비밀과외는 특히 읽는 내내 재미있었다. 빛의 제국 어두워지기전에 익명의 당신에게는 현재의 겉도는 대화뿐인 부부,권력라는 힘의 아래속에 빛나는 거짓말등을 통한 안감힘을 쓰는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마지막으로 위험한 독신녀는 이 소설집에서 조금은 거리가 있는 이물감이 느껴진 소설이었다.
 
정이현은 그녀를 기다리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0편의 소설속 주인공들은 모두 도시라는 배경속에 있지만 도시라는 화려나 불빛이 아니라 고층빌딩숲에서의 고독함과 외로움을 껴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누구를 만나서 술잔을 부딪히며 하루를 마감하고 싶어하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거짓이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싶어한다. 당신의 예쁜 포장지로 포장된 거짓말이 아닌 툭 내던지는 일상의 진솔한 한 마디의 진실을 기다리는 누군가를 돌아보라고 정이현은 그녀 나름대로 귀여운 웃음을 지어내며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다.
 
진실이라는 것은 항상 존재한다. 거짓이라는 것도 역시나 항상 존재하고 있다. 수 많은 거짓과 진실속에서 진실의 눈을 바로 찾아내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일뿐이다. 숙제라 여기면 또 어려울지 모르겠다. 반복된 학습은 때론 거짓을 진실로 여기게도 한다. 바른 눈과 바른 귀를 갖기를 소망함은 어쩜 거짓이 진실 인채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부질 없는 바람인지도 모른다.
 
한 번의 거짓말에 가슴을 졸이던 십대를 지났고 선의의 거짓말은 괜찮다고 눈감음으로 지나간 나의 이십대도 지나갔다. 그건 거짓말이라고 내심 알면서도 그래 한 번 만 봐준다는 마음로 사는 30대를 살고 있다.  명백한 거짓이 아닌 모호한 거짓의 경계(가끔 진위와 진심을 찾을 수 없는 경우) 를 만날때면 정말 당신의 진실이 무엇이냐고 소리쳐 묻고 싶지만 너무 큰 거짓이 드러날까  두려운 것은 나만이 겪는 갈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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