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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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 내일이 오지 않을 꺼라 생각한 적이 없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들이 있었을 뿐. 평범한 일상이 한순간 무너지고 살아가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에게 내일은 어떤 의미일까. 살아있기에 살아가가는 일은 고통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나목』의 ‘나’도 그랬을까. 전쟁이라는 폭력을 견뎌내며 폐허와 함께 살아가는 일을 지금을 사는 이는 알 수 없다.


미 8군 PX 아래층 초상화부에서 일하는 ‘나’는 미군을 상대로 초상화 접수와 가격을 흥정한다. 환쟁이에게 업무를 배분하고 독촉한다. 지루할 정도로 반복된 일상에 새로운 환쟁이 ‘옥희도’씨가 들어온다. 똑같이 미군 애인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그는 달라 보였다. 물론 ‘나’에게 관심을 주는 남자는 따로 있었다. 전기부에서 일하는 ‘태수’였다. 태수는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했고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그러나 태수와 옥희도 둘 중 한 명을 꼽으라면 태수는 아니었다. 태수와 관계는 약간의 밀당 같은 것이라면 옥희도와는 자석 같은 끌림이었다. 옥희도도 ‘나’의 마음을 알고 ‘나’를 향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옥희도는 ‘나’를 아끼는 사람이었다. 아내가 있고 5명의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어도 그는 ‘나’를 사랑하는 일을 멈추었을 것이다.


옥희도는 그런 사람이었다. 스물한 살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두었고 그 마음의 끝을 맺을 수 있는 사람. 스물한 살인 ‘나’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솔직하게 옥희도에게 전한다. 아파서 일을 나오지 못한 그를 병문안을 핑계로 찾아가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 안에 같이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옥희도 같은 사람은 잊고 태수를 생각하라고 말할 게 분명하다. 어쩌면 옥희도를 사랑한다고 믿는 ‘나’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금지옥엽으로 자신을 아꼈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 여동생을 챙기던 오빠 둘의 부재가 만든 감정 말이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않았을 감정이다. 피난을 갖다 돌아온 오빠들은 다락에 숨어지냈다. 계동의 고가에는 ‘나와 어머니만 살고 있어야 했다. 전쟁의 날들이었지만 숨어지내는 오빠들과 어머니가 있기에 두려움은 없었다. 큰아버지와 사촌 오빠의 방문이 있기 전까지. 네 명이 거하기에 다락은 좁았고 ‘나’는 오빠 둘의 거처를 옮기자고 제안했다. 거처를 옮기고 폭격으로 오빠들은 죽음을 맞았다. 자신 때문에 오빠 둘은 죽고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은 일을 마치고 계동의 고가로 오는 시간을 늦추었다.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는데 어머니는 죽은 아들들만 붙자고 사느라 살아있는 딸은 봐주지 않았다. PX에서 돌아온 경을 환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얼마나 추운지, 얼마나 무서운지 묻지 않았다. 부서진 고가 그 자체였다.


때문에 ‘나’는 퇴근 후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같이 보내고 견뎌준 이가 옥희도였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장난감 가게 앞에서 만났다. 옥희도에게 어머니와의 갈등이나 고민을 털어놓은 적은 없지만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전쟁이 앗아간 삶을 그 역시 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벌이로 초상화를 그려야 해지만 화가로써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번뇌하며 말이다. ‘나’는 옥희도의 고독과 고통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옥희도가 그린 그림을 보고 죽은 나무, 고목으로만 보았으니까. 그의 아내를 책망하고 질투했을 뿐이다.


나는 그들의 삶에 다가갈 수 없다. 박완서가 세밀하게 담아낸 미 8군 PX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쓸쓸하고 황폐한 거리를 가득 채운 상념과 전쟁의 상흔이 남은 계동의 고가의 풍경을 그려볼 뿐이다. 그러나 주인공 ‘나’ 스스로 알 수 없는 감정들은 조금 알 것 같다. 어머니를 향한 원망과 한 번이라도 자신을 안쓰럽게 봐주기를 바라는 간절함, 자신을 사로잡는 우울과 죽음, 반대라 삶에 대한 열망과 욕구를 느낄 수 있었다. 소설 곳곳에서 빛나고 눈부신 문장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늙고 초췌한 어머니와 젊고 싱그러운 ‘나’의 모습, 한순간의 불꽃처럼 화려하게 타오르고 싶은 마음에 호텔로 향한 ‘나’의 마음, 요란하게 움직이는 장난감 침팬지의 몸짓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나’와 옥희도의 눈빛.


죽고 싶다. 주고 싶다. 그렇지만 은행나무는 너무도 곱게 물들었고 하늘은 어쩌면 저렇게 푸르고 이 마당의 공기는 샘물처럼 청량하기만 한 것일까. 죽고 싶다. 살고 싶다. 죽고 싶다. (315쪽)


팽팽하게 대립한다고 여겼던 어머니와의 갈등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끝난다. 나의 반항적인 외박이 불러온 결과였을까. 약을 먹고 의사를 불러도 소용없었다. 어머니가 죽고 고가에 나 혼자 남았다. 그리고 나의 곁에는 태수가 있다. 시간이 흐르고 중년의 ‘나’는 남편 태수와 함께 고인이 된 옥희도의 전시회를 찾는다. 그곳에서 마주한 그림.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古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390쪽)


나목에게는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391쪽)


박완서가 그려낸 소설 속 인물들은 전쟁을 살아내느라 삶이 파괴되고 부서졌다. 자신을 괴롭히는 고독과 싸우고 어찌할 수 없는 시대와 싸우고 버텼다. 잎이 지고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裸木)처럼 살았다. 박완서 작가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서진 삶이라고 해서 포기하지 않았다. 봄을 향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박완서 작가는 소설을 통해 폐허의 삶에서 발견한 한 가닥의 희망을 말한다. 시대는 다르지만 부서지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고독하고 외로운 이들에게, 곧 봄에의 믿음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1970년에 발표한 『나목』이 육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빛을 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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