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나?

우리가 저수지에 갔을 때 말이야. 그날 유난히도 어두웠잖아. 태어나서 내가 겪은 수많은 밤들 중에 제일 어둡고 외로웠던 밤이었어. 내가 그 밤을 잊을 수 없는 만큼, 너도 그날을 잊지 못하겠지. 그런데 그거 알아? 그날 일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거. (7쪽)


이런 문장을 읽고 무엇을 상상하게 될까. 분명 그 밤의 저수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일까,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목격자일까. 섣부른 판단일지 모른다. 목격자라니, 그럼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일까. 이꽃님은 이번에도 남다르다. 내가 예상한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사라진 소년 해록, 그리고 같이 있던 소녀 해주.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경찰이 해주를 찾아온 건 당연한 일이다. 해록의 실종, 그 실마리를 해주가 잡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경찰을 향한 해주의 대답은 날카롭고 불안하다. 뭔가 감추는 것만 같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 서툰 독자는 해주를 의심한다. 나 역시 그러했다. 보기 좋게 이꽃님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고 말았다.


소설의 첫 문장처럼 나(해주)는 너(해록)에게 너와 나 사이의 이들을 들려준다. 그리고 해주를 찾아온 경찰이 둘에게 일어난 일을 들려준다.그러니까 사랑 이야기라고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과 객관적인 시선. 엇갈린 두 개의 이야기, 무엇이 진짜일까. 나와 너는 사귀는 사이였다. 첫 만남을 시작으로 너무 예쁜 커플로 학교에서도 유명했다. 그런데 어쩌다 너와 나는 이런 결말을 맞았을까.


너를 만나면서 나는 모든 걸 너에게 맞췄다. 내가 좋아하는 옷이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네가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고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오로지 너만 바라보는 내가 되었다. 친구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고 친구들은 떠났다. 너를 위해 나의 모든 걸 주었는데 너는 나를 멀리했다. 너를 좋아해서, 너를 사랑해서 그랬는데 너는 나를 무시했다. 너를 위해서 아빠의 명품시계까지 훔쳐 선물했는데 너는 그걸 친구에게 주었다. 그리고 미안해하기는커녕 화를 내고 나를 외면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친구들의 조언을 질투로 여긴 나. 해주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아프가 안타깝다. 해주가 사랑이라고 믿는 게 사랑이 아닌 가스라이팅이라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정말 해록은 나쁜 아이일까. 이쯤 되면 경찰관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경찰관이 말하는 해주와 해록의 관계는 반대였다. 해록을 지배하는 건 해주였다. 해록을 가스라이팅하고 협박하고 있었다. 해록은 어떻게 해서든 해주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해주를 꿰뚫어 보는 경찰관이 들려주는 곰팡이 이야기.


“그거 아니? 곰팡이는 한번 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거. 나주에는 피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게 곰팡이에 전염되고 말아. 그런데 무서운 건 이거여. 곰팡이가 더럽고 건강을 해친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 순부터는 곰팡이를 당연하게 여기게 되거든. 매일 아주 조금씩 조금씩 번져 가니까. 곰팡이가 온 집안을 점령해 옷과 가구까지 모조리 썩어 가는데도 심각한 줄 모르는 거냐. 그 집에서 꺼내 입은 옷에도 곰팡내가 진동하는데, 몰라. 늘 곰팡이랑 함께니까 모르는 거지.” (168쪽)


의사인 아빠와 대기업에 다니는 엄마가 있었지만 늘 혼자였던 해주는 외로웠고 누군가 필요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간절함이 집착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해록에게 그래도 된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티를 내지 않으려 해도 티가 나고, 숨기고 싶어도 자꾸만 들통나 버리거든요. 그 반대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어도 그것이 진심으로 당신을 설레게 하는 것인지, 망설이고 주춤하게 만드는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겪고 있을 많은 사랑이 따뜻함일지 두려움일지 알 수 없습니다. 그걸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겠지요. (「작가의 말」 중에서)


빠져드는 소설이지만 복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불안한 십 대의 감정을 잘 그려낸 이 소설을 뭐라 불러야 할까. 추리소설, 스릴러, 심리소설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해주의 말처럼 사랑 이야기라 해야 할까. 사랑이었을 것이다.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상처와 고통은 사랑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맞추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건강한 사랑이라는 걸 말이다. 사랑하니까 당연하게 나는 너를 참아주고 감당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걸. 그건 사랑이 아니라는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