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프팅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21
범유진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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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운동회, 소풍, 수학여행, 친구, 울타리, 선생님, 공부, 야간자율학습, 점심시간, 이런 단어가 생각난다. 그러다 특정 학교로 마음이 모아진다.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을 만난 학교, 지금까지 나를 응원하는 친구를 만난 학교. 지금 아이들에게 학교란 어떤 곳일까? 아마도 내가 모르는 이미지의 학교일 것이다. 공교육의 부재, 입시지옥, 학교폭력, 부실급식 같은 게 아니더라도 말이다.


범유진의 청소년 소설 『쉬프팅』은 학교란 어떤 곳이며, 학교의 역할은 무엇인지 묻는다. 아니, 학교가 정말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냐고 묻는다. 소설 속 ‘로아’와 ‘도율’를 통해 그 질문에 답하게 만든다.‘로아’와 ‘도율’에겐 학교가 전혀 다른 공간이다. 모범생이며 클라이밍 선수인 로아는 학교가 정말 좋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웃는 얼굴의 로아에게 아버지의 폭력과 엄마의 무관심을 피해 달아날 수 있는 학교가 도피처다. 학교폭력을 당하는 도율은 학교가 정말 싫다. 수업 시간에 집중도 못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저주할 방법만 연구한다. 정말 그런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폭력 실태 조사서에 신고를 했지만 담임은 장난이라는 가해 아이의 말을 믿을 뿐이다. 분노를 참지 못한 도율은 사고를 저지르고 달아난다.


우연히 로아와 도율은 쇼핑몰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다. 그리고 도율은 로아에게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방법 쉬프팅에 대해 설명한다.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까. 정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곳에서는 학교 따위는 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말했잖아. 평행세계에 갈 수 있다고. 그걸 쉬프팅이라고 부른대. 우리도 한번 해보자! 여기 빈 건물이니까 다른 사람은 엘리베이터 안 탈 거 아냐. 평행 세계 관심 없어?” (41쪽)


도율의 간절함이 통했던 것일까. 로아와 도율이 마주한 세계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계급이 존재하는 학교, 아니 학교가 아닌 ‘디마이’란 공간이었다. 선생님이 아닌 매니저가 있었고 디마이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일을 해야 했다. 보호는커녕 노동력 착취가 맞았다. 디마이를 벗어난 어디서든 차별, 학대가 자행되었다. 학교가 사라진 세계는 천국이 아닌 지옥과 같았다. 그러나 도율은 이 세계가 만족스러웠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은 디마이에 없었고 어떤 일을 저질러도 매니저가 다 해결해 주었다.


로아는 아니었다. ‘디마이’에 갈 수 없었고 아버지의 폭력은 이곳에서도 여전했다. 로아에게는 어떤 울타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로아의 상황은 방황하는 가출 청소년이나 제도권에서 벗어난 갈 곳이 없는 자퇴 학생의 모습이었다.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디마이는 무너져야 했고 디마이 밖의 아이들을 위해 장치가 필요했다. 학교가 있던 세계나 학교가 없는 이곳에서도 온전히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로아는 이곳에서도 부모로부터 독립을 원했다. 쉬프팅을 해서 이전을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우선 쉬프팅이 가능한지 알아야 했다. 그러려면 도율이 필요했다. 하지만 도율은 이 세계가 좋았다. 로아와 도율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 선택은 행복을 위한 것일까. 로아가 깨달은 것처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공간이 학교야 할 것이다. 아니, 학교가 아닌 다른 선택지도 있어야 한다.


‘내가 머물고 싶은 곳은 학교 그 자체가 아니었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그들과 있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사랑했던 거야.’ (207쪽)


로아와 도율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택했을까. 잘못을 반성하고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즐거움을 발견했을까. 평행세계로의 이동이라는 익숙한 소재의 SF 소설이지만 학교의 부재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학교란 무엇이며, 지금 학교는 괜찮은가 고민하게 만든다. 과거와 다르게 다양한 홈스쿨링과 대안학교가 존재하지만 지난 코로나를 돌아보면 공교육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게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야. 누구든 옷장 안에 해골을 감추고 있어.” (157쪽)


소설 읽고 떠나지 않는 한 문장. 로아의 말이 아프다. 상처를 감추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상처를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 믿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있는 그런 학교가 필요하다.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이 소설은 어떻게 다가올까. 이런 소설을 읽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염려된다. 제발 그러지 말기를. 친구들과 읽고 어땠는지 자신의 생각을 나눌 시간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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