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예술가의 삶은 짧고 그가 남긴 작품은 영원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예술가의 일』에 이어 조성준의 『당신이 사랑한 예술가』를 읽고 든 생각이다. 예술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수많은 예술가 중에 대중에게 인기를 얻고 오래 기억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언론에 주목받지 못한 삶, 생전에는 얻지 못한 작품의 가치, 재능만 탐할 뿐 예술가를 돌보지 않은 세상. 음악, 미술, 영화,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25명의 예술가의 삶을 마주하다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그들이 남긴 작품을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다.



작가는 25명의 예술가를 5개의 주제로 나눠 소개한다. 목록을 살피고 끌리는 주제를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아는 이름을 발견하고 그를 먼저 읽어도 충분하다. <차별과 편견을 넘다>란 주제는 블랙리스트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도 과거 정권에서 등장했던 블랙리스트. 예술이 전부인 그들은 소리 없이 현장에서 사라졌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도 그러했다.




1950년대 초반 유대인이었고 진보적인 인물이었던 그도 정부의 사상 검증 대상이었다. 직접 심문 받지는 않았지만 방송국 출연 자리를 잃었고 이유 없이 여권 갱신도 거절당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그에게 출국 금지라니. 너무도 치사하다. 번스타인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진술서를 쓴다. 아,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흑인 인권 운동 단체를 후원하고 베트남 전쟁 반대를 외쳤다. 그로 인해 FBI 블랙리스트에 올라 오랫동안 감시당했다. 예술가 얼마나 깊고 강하게 대중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감시하다니. 이해할 수 없다.


번스타인은 언제나 경청했다. 클래식 음악으로 정점에 오른 후에도 자기가 하는 음악이 최고라는 오만에 빠지지 않았다.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의 존재를 존중했다. 자리에 집착하지 않고 떠나야 할 때 떠났다. 그 이후로도 음악을 누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려 했다. (47쪽)


<존 케이지와 굴다처럼>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가는 천재 혹은 괴짜로 불리는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피아니스트로 프리드리히 굴다, 완벽주의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 그리고 한국의 거장 김기영 감독이 있다. 김기영 감독과 함께 윤여정 배우, 봉준호 감독이 생각나는 이가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에 대해 몰랐다. 서울대 의대를 나오고 의대에 진학하고 연극 활동을 했다.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란을 와서 부산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부업으로 <대한 뉴스> 제작했다니. 그것을 계기로 의사는 관두고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 처음부터 영화를 전공했다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을까. 술도 하지 않고 영화인과의 교류도 없이 오직 영화만 생각한 감독. 완벽한 콘티 없이는 영화 촬영을 하지 않았다니. 그의 고집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은 김기영 감독 그 자체였다.


그는 사람들이 직면하기 싫은 주제들을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과장하고, 뒤틀고, 기이하게 표현했다. 이상한 방식으로, 이상한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 안에 당시 사회 병폐를 집어넣었다. 기이한 영화로 흥행까지 거머쥔 김기영의 존재는 라이벌들과 비교해 독보적이었다. (101쪽)


<누가 스타를 죽였는가>란 주제에서 만난 예술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하나같이 애처로운 예술가의 이야기다. 대중은 천상의 노래, 매력적인 재능, 놀라운 연기력을 사랑하지만 무대와 공연장, 스크린 밖에서는 그들을 외면하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빌리 홀리데이를 보고 감탄하지만 무대 밖에서는 '더러운 검둥이' 취급하며 차별했다. 2011년 세상을 떠난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삶은 정말 가련하고 가여웠다.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만족했던 에이미를 세상이 알아봤다. 사랑에 빠진 남자로 인해 약물에 중독되고 그가 떠난 후 상처를 노래했다.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려 재활원을 찾기도 한 에이미 곁에 든든한 지원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스타의 사생활을 깨려고 카메라를 들이미는 세상이 아니라 회복하기를 기다려주는 대중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노래하는 에이미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 <캡틴, 마이 캡틴>과 <시네마 천국으로 떠난 거장>에서는 예술을 위해 전부를 던진 이들의 삶을 들려준다. 연기하는 인물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 히스 레저, 패션이고 명품이었던 코코 샤넬, 전 세계 영화감독이 이탈리아를 찾게 만든 모리코네까지 저자가 소개하는 25명의 예술가는 그가 남긴 작품 속에서 우리의 곁에 살아있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영화를 볼 때 그들의 삶의 겹쳐 보일 것이다.


모리코네는 떠났다. 그래도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위대한 영화는 계속 탄생할 테도, 아름다운 영화음악은 계속 흐를 것이다. 그럼에도 거대한 석양이 저문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역사가 하나의 책이라면,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문장으로 가득한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297쪽)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예술가에게 고마운 시간이었다. 책을 통해 내가 몰랐던 월북화가 이쾌대, 김환기와 백남준의 생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들이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고 어떤 환경에 있었고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알고 난 후 작품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것을 발견하려 노력할 것 같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노력한 그들 덕분에 우리가 사랑한 예술이 존재한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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