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최선
문진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다는 건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선택을 강요하고 부축인다. 내가 해 보니 좋았다고, 내가 이끌어주겠다는 식이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선택한 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최선일까? 알 수 없다. 산다는 건 역시나 내가 사는 일이니까. 그런 점에서 문진영의 단편집 『최소한의 최선』 속 인물은 애틋하다. 그들은 누군가 함께 있으면서도 한결같이 외롭고 쓸쓸하다. 이상한 건 그 쓸쓸함이 나쁘지 않다.


첫 단편 「미노리와 테츠」 속 ‘수민’과 ‘나’는 학창 시절부터 내내 단짝이었지만 성향은 전혀 다르다. 수민과 같이 간 일본 여행에서 우연히 알게 된 미노리와 테츠 부부의 근황을 수민을 통해 듣는다. 수민은 그 후로 혼자 일본에 가서 그들을 만나기도 했다. 최근에 둘이 이혼했다는 소식이다. 여행에서 수민과 테츠는 죽이 맞는 사이였다. 수민은 그랬다. 적극적이며 모두가 수민을 좋아하게 만들었다. 나는 조용하고 얌전한 소심한 쪽이었다.


서울에 남자친구를 만나러 왔다는 미노리의 연락을 받고 나는 고민한다. 수민 없이 미노리와 둘만 만나는 것이라서. 예전에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며 사과하며 그것에 대해 설명하려는 미노리에게 나는 말한다. “나도 알아. 우리는 지구의 다른 한쪽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지.” (「미노리와 테츠」, 30쪽). 아,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작가라니. 신선하다 못해 감동적이다.


빛이 환할수록 더 짙어지는 그림자에 관해. 임계점에 닿기도 전에 쉽게 무너져버리는 마음에 대해. (「미노리와 테츠」, 31쪽)


어떤 감정에 대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그것을 문진영은 자신만의 핀셋으로 집어올려 보여준다고 할까.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단편 속에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 감정, 마음을 담아 이야기한다.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나 관계라고 선을 긋는 그런 게 아니라 그 마음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가만가만 들려준다.





그런 문진영의 시선은 엄마와 삼촌이 어렸을 때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간 외할머니 '배정심' 여사의 이야기인 「내 할머니의 모든 것」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오랜 시간 연락이 닿지 않았던 외할머니는 삼촌의 유산 문제로 엄마와 연락이 닿았다. 할머니는 삼촌의 유산을 포기했고 이혼한 엄마의 몫이 되었다. 손녀인 나는 외할머니가 궁금했고 더 알고 싶었다. 나의 눈에 할머니는 멋져 보였다. 패션이나 말투, 행동, 나를 태하는 태도가 그랬다. 그러나 할머니는 곧 사라졌다. 내가 제안한 할머니의 생일 축하 자리가 마지막이었다.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이 된 나와 엄마는 할머니의 아파트를 찾았다. 할머니가 한 번도 초대하지 않았던 아파트. 단출하게 정리된 공간.


그날 할머니는 자신이 가진 최선의 것들을 몸에 걸치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최선의 것들이자 유일한 것들을. 단 한 벌이의 코트, 하나의 모자, 하나의 목도리, 한 켤레의 장갑. 나는 뒤늦게야 그녀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감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최소한의 최선. 그것이었다. (「내 할머니의 모든 것」, 96쪽)


그날 우리가 목격한 할머니의 집안 풍경이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쓸쓸해 보일지는 모르나, 할머니 자신도 그렇게 느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할머니는 할머니에게 딱 맞는 일일분의 삶을 꾸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 할머니의 모든 것」, 116쪽)


할머니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식인 엄마조차도. 그녀가 원한 삶이 어떤 삶인지, 자식을 버리고 혼자 살기로 결심한 그 마음을 말이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걸 받아들일 뿐이다. 섣불리 단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 외롭고 고독하지 않았을까 상상하지 말고.


누군가 삶은 한 곳에 뿌리를 깊게 내리는 것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건 그의 삶이다. 이곳저곳에 뿌리를 내리거나 뿌리나 열매 없이 줄기만 지닌 삶도 있는 것이다.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 속 육 년의 직장 생활을 끝내고 떠난 인도 여행에서 만난 '안와'도 다르지 않다. 스무 살이나 어린 ‘나’를 친구라 대하는 안와가 살아가는 삶을 모르고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차 불편하고 낡은 도시가 편안해지고 자신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건넨 말 “이 세상은 다리. 이곳에 집을 지으려 하지 말고 건너가라.”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 148쪽)이 위로가 된다.


삶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시작할 수 있고, 이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확신을 얻는 과정이 삶은 아닐는지. 그러니 꼭 이곳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대학교 1학년 때 기숙사 룸메이트로 만난 룸메씨와 나가 즉흥적으로 바이킹을 따라 떠난 월미도 여행을 다룬 「고래 사냥」도 같은 맥락이다. 원하지 않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룸메씨나 주말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는 나에게 삶은 무엇일까. 아무도 나를 붙잡아주지 않고 끌어당기지 않는 느낌. 바이킹을 타면서 느꼈던 어떤 간절함.


한껏 끌어당겨지고 싶었다. 삶 쪽으로. (「고래 사냥」, 159쪽)


문진영의 소설 속 인물을 굳이 설명하자면 환하기보다는 어두운 쪽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나쁘거나 잘못된 건 아니다. 어둠을 아는 사람은 그 안에도 빛이 있다는 걸 안다. 어둠에 속한 시간이 조금 길어질 뿐 그들이 환한 쪽을 거부하는 게 아니다. 천천히 그들의 속도로 환한 쪽으로 나오는 중이다. 그게 그들의 삶이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