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페터 슈탐 지음, 임호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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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를 꼽자면 낯선 세계로의 초대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소설 속에서는 가능하니까. 처음 접하는 작가의 소설에 대한 기대도 그러하다. 이 작가는 무엇을 들려줄까,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작가의 의도를 따라잡을 수 없지만 그래도 소설을 많이 읽다 보면 나름대로 그 끝을 예상할 수 있다고 여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도무지 모르겠다. 페터 슈탐의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은 혼란의 연속이다. 어쩌면 나에게만 그런 소설일지도. 소설이란 그런 것이기도 하니까.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면 한 번 더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외모만 그런 게 아니라 하고 있는 일이라 취향, 삶의 태도까지 그렇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속 화자 앞에 그런 사람이 나타났다. '도플갱어'라고 치부하기엔 부족한 또 다른 나를 만난 것이다. 20년 전의 젊은 나를 만나는 것, 가능할까. 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러나 독자는 화자 앞에 나타난 옛 연인 ‘막달레나’를 닮은 '레나'에게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자신과 막달레나의 만남, 그리고 그가 쓴 단 한 권의 책과 배우였던 막달레나의 이야기. 그것은 과거가 아니다. 레나에게는 현재의 일이다. 그러니까 레나도 현재 배우이고 남자친구는 작가이며 그의 이름은 크리스다. 물론 나는 크리스와 만난 적이 있다. 작가인 화자가 고향의 작은 서점에서 낭독회를 하고 돌아온 호텔에서 만난 직원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크리스란 청년은 분명 자신이었다.


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화자는 레나와 크리스의 사랑과 위기를 모두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과 막달레나에게 이미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레나의 입장은 어떨까? 늙은 중년의 남자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막달레나와 그의 첫 만남은 크리스가 자신과의 첫 만남과 닮았다. 그를 뿌리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자가 들려주는 이런 말 때문일까. 아니다, 그건 레나에게만 들려주는 게 아니라 독자를 향한 것이라 여겨진다.


당신은 언제고 항상 원래의 길로 다시 되돌아오게 돼 있소. 당신의 행위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오. 어떤 작품이 여러 연출가에 의해 연출될 경우와 마찬가지요. 무대가 달라지고 심지어 대사가 바뀌거나 축소되어도 줄거리는 변함없이 진행된다는 것이오. (91~92쪽)


겨우 반나절,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을 그려낸 이 소설에서 화자와 레나는 산책을 하고 대학 도서관에 들르고 가게에서 대화를 이어간다. 하지만 나는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몽롱하다. 실재하는 게 누구인가 혼란스럽다. 화자와 막달레나인가, 레나와 크리스인가. 20년 전 화자는 막달레나를 떠났지만 현재는 그 반대다. 레나가 크리스를 떠났으니까.


젊은 파토스에 휩싸여 나는 그녀와 글쓰기 중 하나를, 사랑과 자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제 비로소 나는 사랑과 자유는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공존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33쪽)


200쪽도 안 되는 소설은 내게 끝까지 마침표나 느낌표를 안겨주지 않았다. 무수한 물음표만 남겼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화자(크리스토퍼)를 만나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확신은 들지 않는다. 다시 화자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다고 해도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페터 슈탐의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은 절대 다정스럽지 않은 소설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모호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누군가 저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안겨준다.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를 다 꿰뚫고 있는 나를 닮은 존재와의 만남이 만들어낼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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