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안보윤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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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인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나와 다른 누군가를 대면하면 그 마음은 슬그머니 쪼그라든다. 그 다름이 상대의 잘못이 아닌데도 마치 그가 대단한 잘못을 한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차별이라고만 배웠을 뿐 공감, 공존, 연대라는 말로 확장시키지 못했다. 누군가 나와 다른다는 건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 생김새가 다르니 성격과 취향은 물론이며 사고와 가치를 두는 것도 다르다.


왜 당연한 것들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스며드는 일은 어려운가. 개인주의 이기심,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니까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을 거라는 안이한 태도 말이다. 창비교육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엮은 『공존하는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암묵적으로 비난하고 방관하는지 확인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소설들, 그 단면에 나도 속하고 있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며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수록된 8편의 이야기 가운데 5편은 이미 읽은 소설이지만 다시 읽고 눈이 오래 닿는 문장은 여전히 같았다. 김숨의 건조하고 단단함과 최은영의 다정한 호흡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부터 말하자면 김숨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서 고독사와 가난한 노인의 삶에 대해 말한다. 당장은 늙지 않고 노인이 아니기에 우리가 외면하는 그들의 삶. 아내가 죽고 혼자 남은 노인의 곁에는 아내가 데려온 한 마리 개만 남았다. 자식도 이웃도 친구도 없이 혼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삶은 더 이상 뉴스의 기사가 아니다.


최은영의 「고백」에서 미주는 수사가 된 종은에게 학창 시절의 일을 꺼낸다. 절친 그 이상으로 가까웠던 주나와 진희와 보낸 시간들을 어쩌다 그들의 관계가 달라졌는지 들려준다.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한 진희를 대하는 주나와 미주의 태도. 아무도 없다고 느꼈을 진희는 세상을 등진다. 가장 든든하다고 여겼기에 주나와 미주에게 고백했을 진희.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여주는 마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까운 미주의 마음은 우리에게 말한다. 다르다는 건 잘못이 아니라고 나의 삶을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시간을 되돌려 어느 한순간으로 갈 수 있다면 그때로 가고 싶다고 미주는 간절히 생각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고, 나는 너의 편이라고 말할 거라고, 너를 그렇게 외롭고 아프게 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때의 미주는 더듬거리다 끝내 제대로 하지 못했다. ( 「고백」, 118~119쪽)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시기,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비밀이 쌓여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창구가 부족함을 느낀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소수와 약자의 삶을 향한 연대가 필요하다. 그보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김미월의 「중국어 수업」에서는 점점 다양해지는 사회 구성원을 향한 멸시나 혐오의 시선과 마주한다.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수가 만나는 이들의 목적은 비자를 받아 불법 취업을 하기 위해서다. 그들의 노동력만 착취할 뿐 보상과 대우는 뒷전이다. 수가 가르치는 사람들도 3개월마다 재계약을 하는 수 역시 약자다.


김지연의 「공원에서」는 폭력에 노출된 여성 수진이 등장한다. 평소 머리와 옷차림 때문에 남성으로 오해받지만 정작 수진은 그게 편했다. 아이러니하게 남자라 여겼던 수진이 여자라는 게 알려지면서 폭력의 대상이 된다. 누구에게나 허용된 공원에서 말이다. 수진에게 공원은 상처와 폭력의 기억으로 남았지만 그곳에서 울고 있는 자신을 위로하는 한 아이를 만난다. 우는 사람을 혼자 두고는 못 간다는 아이, 그 아이가 없었다면 수진은 어땠을까?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마음, 과연 나에게는 있을까?


문득 나는 내가 사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처음에는 너무 뜬금없고 이상한 감정처럼 느껴졌는데 점점 선명해졌다. 뜻대로 된 적은 별로 없지만 나는 사는 게 좋았다. 내가 겪은 모든 모욕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 내고 싶을 만큼 좋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는 건 좋다. 살아서 개 같은 것들을 쓰다듬는 것은 특히다 더 좋다. (「공원에서」, 90쪽)


안보윤의 「밤은 내가 가질게」와 조남주의 「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는 가장 보편적인 일상을 소재로 한 소설로 가장 밀접하게 다가왔고 아리게 만들었다. 「밤은 내가 가질게」속 ‘나’는 어린이집에서 일한다. 부모가 학대하고 방임하는 아이를 신고하지만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그런 나의 집으로 사고만 치는 언니가 들어온다. 가출을 하고 사기를 당하는 언니가 유기견 봉사를 다니면서 급기야 개를 데리고 온다. 폭력에 노출되었던 언니는 상처받은 개를 돌보며 상처를 치유받는다. 이상한 건 언니를 향한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진다는 것이다.


아무 의심 없이 대할 수 있는 존재가 내 앞에 있다는 거. 그래서 내가, 아직 상냥한 채로 된다는 거, 그게 나한테는 정말 중요해. (「밤은 내가 가질게」, 46쪽)


아무 의심 없이 대할 수 있는 존재가 내 앞에 있어 상냥한 채로 된다는 언니의 말이 마음에 박힌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우선은 의심부터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게 슬프다. 그래서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장애 아동을 위한 병원이나 학교, 노인 요양 시설이 주변에 들어오면 기를 쓰고 반대하는 조남주의 「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가 더 와닿았다. 우리의 민낯이라서 말이다. 학원을 운영하는 경화가 학원 옆 건물에 치매 시설이 들어온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러나 정작 살림을 봐주는 엄마가 초기 치매 증상을 보이자 기자 앞에서 노인 요양원을 환영한다는 인터뷰를 한다.


피는 더럽거나 위험한 것이 아니고 사고나 불운이 옮겨 가는 것도 아니다. 저는 그냥 조금 다쳤을 뿐입니다. 아픈 사람이라고요. 도움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라고요! 경화는 억울하고 서러웠다. 그리고 그 마음이 염치없어 부끄러웠다.(「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 218쪽)


누가 경화를 비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알고 있다.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그 누구도 사고나 불운을 옮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공존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걸. 나와 다른 누군가와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에게 다른 누군가는 나란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돌보며 같이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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