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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 온다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10
이지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평점 :
헤어짐의 때가 온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건 슬픈 일이다. 아이들의 경우는 몰라야 한다. 눈치가 빠른 아이는 좋은 게 아니니까.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 어른의 눈치를 보는 건 그들만의 생존방식이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아이들은 다 안다. 자신이 어떤 위치인지,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말이다. 기관의 선생님이 애정을 갖고 지켜본다고 해도 아이들에게는 부족한 게 사랑이다. 아이들은 그 사랑을 어디서 채워야 하는지 그 사랑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스스로 학습하게 된다. 제2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대상 수상작 이지애의 『완벽이 온다』 속 민서도 다르지 않았다. 여섯 살에 그룹홈에 들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덩그러니 세상으로 나온 민서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도 같았다.
『완벽이 온다』는 그룹홈에서 나와 자립하며 일찍 사회에 흡수된 아이들, 어른이 아닌 데 어른인 척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그룹홈의 존재와 역할을 알 수 있었지만 소설 속 민서처럼 어린 나이의 아이가 생활하는 줄은 몰랐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잠시 부모와 떨어져 지내며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아이도 있었지만 민서에겐 그런 기대가 없었다. 해서 언니와 솔과 설 쌍둥이 언니들과는 달랐다. 해서 언니처럼 엄마도 없었고 쌍둥이 언니를 찾아오는 아빠도 없었다. 민서는 기다림에 익숙했지만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림이란 두려운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도망갔다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에게 부모란 언제든 없어질 수 있는 존재였다. 나는 아빠도 언젠가 나를 버리지 않을까 늘 두려웠다. 그게 언제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헤어짐이 오늘은 아니기를 바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179쪽)
그런 아빠는 죽고 나서야 연락이 닿았다. 민서가 나름 혼자 살기에 적응하고 있을 때 그룹홈 선생님이 소식을 전했다.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아빠의 죽음은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의 죽음 그 이상과 이하도 아니었다. 민서는 누구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그게 편했다. 누군가 관계를 맺고 지내다 버려질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혼자여도 충분했다. 해서 언니는 민서와 달랐다. 항상 먼저 연락하고 미용실에 와서 머리를 하라고 했다. 이번에도 연락을 해서 임신 소식을 전했다. 남자 친구와 완벽한 가정을 이룰 거라며 태명도 완벽이라 했다. 그룹홈에서 같은 방을 쓰며 지냈던 해서 언니는 민서를 친동생처럼 아꼈다. 엄마와 살 거라 그룹홈을 떠났지만 곧 다시 돌아왔다. 쌍둥이 언니와 민서보다 먼저 그룹홈을 떠난 해서 언니가 엄마가 된다니, 이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았다. 카톡을 보내고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미용실에 찾아가니 그만두었다고 했다. 어디 사는지 집도 몰랐다. 민서는 그제야 한 번도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룹홈을 나오고 처음으로 솔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솔과 설 쌍둥이 언니는 고등학교 때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가 술도 안 마시고 폭행도 사라졌다고, 그룹홈 선생님은 만류했지만 쌍둥이들은 가족을 택했다. 그 이후로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솔 언니는 설 언니의 죽음에 대해 말했다. 선생님의 걱정대로 아빠는 달라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아빠는 감옥에 갔다고. 민서에게 밥을 사주면서 솔이 들려준 이야기다. 그리고 해서의 집을 안다고 한 번씩 그랬다며 기다려보자고 했다.
민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솔 언니와 자주 만나고 솔 언니의 챙김을 받았다. 그룹홈에서처럼 말이다. 해서 언니가 연락을 해오면서 셋은 자주 어울렸다. 해서 언니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남자친구가 떠난 것이다. 완벽이면 남겨 놓고. 완벽하기를 바랐던 해서의 꿈은 부서졌다. 해서가 자란 것처럼 완벽이도 어떻게든 자랄 거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다. 민서, 해서, 솔은 삼각형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지냈다. 그건 나쁘지 않았다. 솔 언니가 돈을 빌려달라고 해도 선뜻 빌려줄 수 있었고 솔 언니의 자살 소식을 해서 언니가 아닌 자신에게 연락이 닿은 것도 다행이었다. 솔 언니는 그동안 모든 걸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민서를 챙겼다니, 민서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솔 언니와 해서 언니를 끊어 내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두렵다는 이유로 솔 언니와 해서 언니를 끊어 내는 게 아빠 같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 부질없더라도, 다시 상처받더라도, 결국 실패하더라도 나는 믿어 보기로 했다. 솔 언니는 아빠와 다르다. 아빠는 죽었고 솔 언니는 살았다. 배신의 순간에서 솔 언니는 마음을 바꾸고 돌아왔다. (197쪽)
캐리어 하나만 남은 솔, 완벽하지 않은 완벽이를 품은 해서,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소중함을 알게 된 민서. 셋은 같이 지내기로 한다. 누구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충분하고 뻔한 결말이 이상하게 기쁘고 좋았다. 좁고 불편한 공간은 그룹홈과 닮았지만 그곳에 없던 게 있었다. 회복되는 설 언니를 지켜보는 마음, 완벽이와 같이 살아간 시간의 기쁨,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민서의 모습 말이다. 민서, 해서, 솔, 완벽이가 만들어 갈 소중하고 포근한 가족이 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조금 일찍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는 청년들이 자립하는 모습은 서툴고 아프다. 소설은 그런 청춘의 실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안전한 울타리가 없어 스스로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 삶. 상처투성이라 타인을 볼 여력이 없다. 민서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같은 처지의 삶을 끌어안고 손을 내민다. 해서와 설이 그랬던 것처럼. 삼각형이었던 구도가 사각형이 되고 안정감은 커졌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아니 완벽의 새 기준을 만들면 된다. 저기 완벽이 오고 있다는 걸 기대하고 기다릴 수 있다. 진정 아름다운 성장소설이다. 손을 잡고 연대하며 성장할 그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