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찾아서
이순원 지음 / 문이당 / 1997년 10월
평점 :
절판


어려서 이 시골을 무척이나 떠나고 싶었던 나는 엄마의 가슴에 앙칼진 못을 박고 고등학교를 외지로 나와버렸다. 집안 형편을 알았지만 모른채 하였고 내심 왜 나만 안되냐는 오기도 가득했는지 모른다.
대학졸업을 하던 해 엄마가 갑작스레 돌아가지 않았다면 재작년 고교진학을 앞둔 조카에세도 어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라고 부측였을 것이다. 나를 품어줄 고향에 엄마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고향의 의미가 없다.허나 아이러니한 운명은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이 시골로 나를 다시 데려다 놓았다.
손을 뻗으면 여기 저기 많은 바다가 잡힐 듯 하지만 내가 가본 바다는 몇 안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나는 동창녀석들을 통해 내가 느끼는 거리감과 동질감은 책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그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말을 찾아서]라는 책에는 이순원님의 은비령이 있다. 그 언젠가 눈내리던 한계령에 이창훈과 이영애가 있었던 드라마. 그래서 더 기억이 되는 이름 은비령. 내가 즐겨보았던 TV문학관은 종종 이렇게 그 이미지의 원본인 책을 궁금하게 만든다. 은희경의 '내가 살았던 집' 김탁환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두 작품의 영상도 여전하게 내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은비령은 그 이미지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기대만큼 나를 충족시켜 주지 않았다.
[말을 찾아서] [시동에서] [강릉 가는 옛길][은비령] [영혼은 호수로 가 잠든다] [매듭을 이은 자리 ] 이렇게 6작품이 수록된 이 소설집은 은비령외의 다른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말을 찾아서 - 자식이 없던 작은 집으로 양자를 가게 된 주인공 수호의 성장소설로 읽혀졌다. 나귀를 끌던 양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과 가기 싫은 양자로 살아야하는 두 아버지를 모시고 살게 되는 수호의 내적 갈등을 잘 드러나 있다. 양아버지의 나귀가 끄는 수레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부분은 이효석의 메일꽃 필 무렵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작가의 고향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릉 가는 옛길 - 내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소설속에 등장하는 작은 시골 초등(국민)학교의 모습과 선생님이라는 권력자와 그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식으로 겪었던 경험이 무척이나 와 닿았다. 교실바닥과 복도를 양초를 바르고 문지르며 청소하고 특별활동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요즘 말하는 특기적성을 하던 장면에서 나도 글짓기반이었었지 하는 생각을 웃음짓게 되었다. 내 어린시절과 유난하게 학교에 자주 오던 엄마를 둔 아이가 전인상(지덕체를 겸비한 아이에게 주는 상이었다)을 탈 때 단 한 번도 학교에 오지 않았던 엄마를 원망했던 어린시절의 나를 보게 되었다. 물론 주인공 수호형제처럼 우리집이 아주 가난한 건 아니었지만 다 알아서 잘 하리라는 엄마의 믿음을 철이 든 다음에야 헤아릴 수 있었다고 할까?

이 단편에는 학교라는 또 다른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자율적인 사회가 아닌 독재에 가까운 사회를 연상시키는 학교로 쓰여졌다. 그 안에서 상처받을 어린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거의 없다. 누가 옳다 그르다 애기가 아니라 누구를 마음속에 잊을 수 없는 스승으로 둔다는 건 그것 자체로 순수하고 아름답다 196쪽 어른이 되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작가의 마음을 알거 같다.
나머지 네 편의 소설은 삶에 대한 존재의 이유로 허덕이는 사람들의 이야기속에 작가 스스로의 내면적 갈등과 피동사로 보여지는 삶의 흐터진 조각 조각이 잘 묻어 있는 듯 하다.이 소설집의 단편들은 강원도,강릉,설악산 한계령,경포대등 배경으로 쓰여졌는데 작가의 어린시절 기억 중 일부를 꺼내서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줄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강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주인공이 모두 남자이며 드러내고 있는 이름은 이수호 라는 점으로 남자나 선생님으로 표현된 드러나지 않은 주인공 역시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또 하나의 이수호라고 짐작하게 한다. 이 이수호라는 인물은 작가이순원의 그림자가 아닌가 싶다. 40대를 접어들때 쓰여진 이 책은 남자들의 연령도 40대이고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의심은 주의를 두고 읽지 않아도 책의 곳곳에서 나타난다.

영상의 은비령을 기억하지 않고 책으로 먼저 은비령을 만났더라면 은비령에 대한 신비감을 잃지 않았을꺼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책이나 작가에게서 느껴지는 선입견을 버려야함을 알지만 아직 내게는 그 정도의 눈이 없다. 매번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여류작가의 책을 만났던 내게 눈을 맞추고자 기다리는 이윤기님의 나비 넥타이를 만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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