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뜰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4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함박꽃(작약)이 피어있고 커다란 향나무 옆으로 탐스런 수국이 있던 내가 태어난 허름한 작은 시골집의 비오면 질퍽거리던 작은 마당. 내 어린시절,막내딸이라는 위치로 퇴근하는 아빠에게 두 언니들을 대신하여 맛난 과자나 사탕을 사달라고 전화를 걸어 애교를 부리는 애교쟁이 이기도 했었다. 그때의 전화체계는 전화교환수가 있던 때인데 때마침 아빠는 우체국에 근무하셔서 바로 통화할 수 있었다. 그저 즐겁고 욕심많던 내 어린시절.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나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웃음이 사라지는 사춘기를 겪어냈다.

이 책은 단편을 묶어낸 소설집이라는 느낌보다 유년을 거처 사춘기를 지나고 사회로 나가고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중에는 빈 겁데기만 남게 되는 슬픔의 간직하는 우리의 어머니로 이어지는 그런 한 여자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또한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다시 읽는거 같기도 했다.

우선 소설의 주인공이 모두 여자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여류작가의 여류 주인공을 좋아하는 편이다. [유년의 뜰] [중국인 거리] [겨울 뜸부기] [저녁의 게임] [꿈꾸는 새 ][비어 있는 뜰] [별사(別 辭)] [어둠의 집]을 하나씩 만나본다.

유년의 뜰중국인 거리는 말그대로 유년의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이라는 공통적인 소재를 다루며 여자 아이를 빌어 삶의 고통과 내면의 세밀함을 그 암울했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있는그대로 드러내려고 한다. 유년의 뜰 의 내가 말없는 아이로 등장하는 반면 중국인 거리의 나는 데바라진 아이로 살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가족의 흐터짐과 동시에 가족이라는 응집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느껴지며 이제 유년기의 여자 아이가 아닌 여자로 태어나는 모습을 담아낸다.

겨울 뜸부기저녁의 게임은 어른으로 성장한 여자의 이야기로 오빠라는 숨겨진 존재가 나타난다. 엄마에게 너무 큰 보물이었던 오빠는 결국 엄마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가져가고 그 엄마의 곁에는 나만 남겨지고 소소한 반복의 일상속에 담담함이 묻어있는 겨울 뜸부기와는 달리 저녁의 게임에서 오빠는 목소리만을 남긴채 사라진 신비한 존재이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고 주인공 나와 당뇨병을 앓고 있는 아빠도 무척이나 모호하고 몽환적이다.

꿈꾸는 새비어 있는 뜰과 별사에서는 결혼을 한 여자들의 이야기로,완벽할 정도로 행복하게 보여지는 일상의 뒷편의 보여지지 않은 또 다른 일상속의 외로움에 쉴 새 없이 말을 하는 꿈꾸는 새의 나를 만나게 되는데 무척 안쓰럽다. 시대가 지난 지금의 여자들은 왠만해선 모두 일을 가지고 있거나 바쁜 생활을 살고 있게지만 공허한 내면을 달래려 주인공인 나처럼 어디선가 그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있을지 모른다. 누구가를 기다리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는 글로 시작되는 비어 있는 뜰의 나 역시 남편과는 소통하지 못한다. 별사에서도 남편은 먼 거리에 있다, 그것을 죽음을 빌어서 나타내고 있지만 비어 있는 들과 별사는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지키려는 안간힘 같은게 내게로 전해졌다.그러나 작가 오정희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어둠의 집은 커다랗고 낡은 집에 혼자 남아있는 중년 여자의 모습이다. 비가 와서 방수공사를 하고 페인트칠을 하고 식구들을 기다리지만 이제 각자의 세상을 꿈꾸는 가족들의 귀가는 점점 늦어진다. 그러는 사이 여자는 낡은 낙엽처러 부서지기 시작한다.
 
소설속의 주인공에게는 아버지,오빠,남편으로 이어지는 남성의 부재가 있다. 시대적인 배경이라하기에도 그 부재는 우연 치고는 너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런한 인물을 심어놓은 구성으로 작가가 하고 싶은 메세지는 무엇이었을까? 혼자서도 아름다운 뜰을 가꿀 수 있다는 걸까? 아니면 그들과 다시 소통하고 사랑하라는 것일까? 전자이든 후자이든 그 부재에 관해서 한 번쯤 깊게 생각해 볼만하다.

쉽게 읽혀지는 글이 아니라서 어쩜 더 집중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낯선 단어는 검색을 하기도 했다. 초판이 1981년이라는 것을 보고 소설속의 여자들은 지금쯤 진정한 자기만의 뜰을 가지고 있을꺼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며 유년의 뜰 이라는 책으로 저 멀리 잠자고 있던 나의 유년의 모습을 꺼내보고 그 곳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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