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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케이크의 맛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혜진 지음, 박혜진 그림 / 마음산책 / 2023년 5월
평점 :
막다른 골목을 만났을 때 바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알면서도 두리번거리면 시간만 낭비한다. 선택지가 하나일 때 고민 없이 선택하거나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매번 고민한다. 더 나은 선택지가 숨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알려주는 이가 없어 더 힘들다. 안내표지를 찾을 수조차 없다. 살다 보면 만나게 되는 고비,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좌절한다. 2020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랬다. 처음이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랐다. 불안만 증폭되었다. 김혜진의 짧은 단편 소설 『완벽한 케이크의 맛』에서 만난 몇 편의 소설은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지나왔지만 온전히 나오지 못한 감정들이 아프다.
비염으로 인한 기침이나 재채기가 코로나에 대한 공포를 키워 결국엔 해고 사유가 아닌데도 학원 강사를 내 보내야만 하는 「강사의 자질」은 2020년의 봄을 떠올리게 만든다. 개학이 늦어지고 비대면 수업으로 모두가 힘들었던 때 특히 학원가의 피해가 컸다고 알고 있다. 오래오래 학원에서 함께 일할 좋은 강사였지만 불안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불안을 키우는 건 감염병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었으니까. 머리로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의심을 떨칠 수 없는 건 마음의 문제였으니까. (28쪽, 「강사의 자질」)
이처럼 증명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피해를 보는 일은 주변에 많다. 내 일이 아니기에 진실보다는 소문에 의지하게 된다. 수영을 배우는 아이 때문에 강습반 부모들과 어울리는 계기가 된 빵집 「밀 베이커리」는 ‘나’에게 좋은 가게였다. 한 아이가 빵을 먹고 탈이 난 후 모든 상황이 변했다. ‘나’는 빵집을 계속 다녔고 부모들은 ‘나’와 아이를 은근히 따돌렸다.‘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등을 돌려야 했을까. 무리에 속해야 한다는 강박, 주류의 뜻에 따라야 하는 암묵적인 사회적 시선이 느껴져 씁쓸하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걸 부인하지 못해서.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앞과 뒤가 있지만 우리는 때로 한쪽만 보려 한다. 목소리가 큰, 지위가 높은, 갑과 을 중에서는 갑의 쪽을 말이다. 다른 쪽도 보고 듣겠다고 생각하지만 곧 잊는다. 내 일이 아니라서. 그 모든 게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김혜진은 차분하지만 조곤조곤 알려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곳이고 혼자서 살 수 없는 곳이라고.
그런가 하면 타인을 향한 마음이 어떤 계기로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소란스럽고 떠들썩한」 속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마주하는 가족들의 낯선 모습이 보여주는 마음이나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미란을 만난 「십 년」에서 발견한 ‘수지’의 마음이 그러하다. 잊고 있었던 본연의 마음이랄까. 그러니까 맘에 안 들고 싸우기 일쑤인 가족을 향한 애틋함 같은 것 말이다.
오늘 자신이 만난 건 미란뿐만이 아니라 지난 시절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을, 과거의 나를 만나는 건 그 시절을 함께 지나온 누군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미란을 통해 실감한 덕분인지도 몰랐다. (103~104쪽, 「십 년」)
마음이라는 건 참 어렵다. 꺼내서 보여줄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말과 글, 행동을 통해서 짐작하고 판단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여도, 친한 친구여도 말을 숨기고 감추면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말들도 필요하다. 「극락조」속 두 ‘수연’과 ‘희나’도 다르지 않았다. 식물을 키우고 있는 수연은 출장을 갈 때 희나에게 부탁을 하는데 희나는 이번에는 어렵다고 말하지만 수연의 걱정이 떠올라 가게 된다. 물을 주기만 하려고 했는데 다음 날 다시 가서 화분 갈이를 가다 손을 다치고 말았다. 의사는 심각한 상처라고 말했지만 희나는 수연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수연은 화분을 갈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나중에야 희나가 화분을 갈면서 극락조의 뿌리를 다치게 했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그런 것처럼 수연 안에도 꺼내지 않았던 수많은 말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그런 말들이란 기다리면 어느새 또 저절로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그 기다림 덕분에 관계가 이렇게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였다. (128쪽, 「극락조」)
김혜진의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완벽한 케이크의 맛』의 짧은 단편은 이전에 느끼지 못한 김혜진의 감각을 느낀 것 같아 좋았다. 흐트러진 마음을 모으고 힘들지만 꼿꼿이 서려고 애쓰며 꼼꼼하게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보인다고 할까. 어우러진 그림도 좋았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시리즈가 그러하지만 특히 보드라운 온기가 전해지는 그림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