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고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인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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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소유가 아니라는 걸 안다. 무조건적인 사랑도 진정한 사랑은 아니다. 상대가 원하는 사랑을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를 때가 있다. 그보다 더 어리석은 사랑은 내가 원하는 사랑만 고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었고 결혼에 이르렀지만 어딘가 잘못된 걸 느꼈을 때 그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할까. 프랑수아즈 사강의 스물아홉 번째 소설로 30년 만에 부활한 『황금의 고삐』 속 뱅상과 로랑스 이야기다. 


결혼 7년 차에 접어든 그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사랑이었다. 부유한 로랑스의 집안에서 무명의 음악가 뱅상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뱅상과의 결혼으로 로랑스는 아버지와 연락을 끊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선택한 로랑스의 사랑은 뱅상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로랑스가 원하는 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뱅상은 움직였다. 양복 스타일은 물론이고 뱅상의 용돈, 사랑을 나누는 방식까지 로랑스가 결정했다. 뱅상은 그 사랑에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만족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뱅상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피아노를 치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살짝 외도를 하는 일상을 유지했다. 그가 만든 영화 음악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뱅상의 성공으로 기울어진 사랑이 적어도 균형을 이루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그들의 사랑에 균열을 냈다. 뱅상의 손에 들어오지도 않은 그 돈이 갈등의 시작이었다. 이제껏 로랑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받으며 살아온 뱅상에게 돈은 내적 자유를 허락했다. 마음대로 양복을 고르고 친구와 함께 지낼 곳을 생각하고 새로운 피아노를 구입하려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이상한 건 로랑스가 뱅상의 성공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음악으로 받은 수입을 전부 지인이 만드는 영화에 투자하자고 제안하고 장인을 내세워 공동계좌를 만들었다. 그것은 돈을 찾을 때마다 로랑스가 서명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 문제로 인해 로랑스와 뱅상의 거리는 멀어진다. 그 과정에서 뱅상은 로랑스와 자신의 사랑을 돌아본다. 로랑스는 분명 자신을 사랑했다. 하지만 뱅상은 로랑스에 대한 사랑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로랑스를 만나면서 어느새 자신을 지배한 로랑스에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로랑스가 뱅상을 가스라이팅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입을지 뱅상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영화 음악으로 성공한 뱅상의 뒤에 뛰어난 조력자인 로랑스가 있다는 기사와 인터뷰를 뱅상만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누가 봐도 뱅상을 향한 로랑스의 집착이었다. 안타까운 건 뱅상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로랑스를 떠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의 절망의 근원에는 우선 내가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힘도, 신뢰감도 경쾌함도 갖지 못한 나, 유치하고 소심하고 보잘것없는 나, 마침내 나는 존재 그 자체보다 나 자신을 더 원망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또 하나의 다른 내가 있어서, 그것은 보통 때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삶을 되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256쪽)


사강은 너무도 뻔한 사랑을 다루면서도 전혀 뻔하지 않게 사랑을 다룬다. 사강은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아름답고 솔직하게 담아낸다. 로랑스와 뱅상의 교묘하게 주고받는 밀당으로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하게 만든다. 얼핏 『황금의 고삐』에서는 모두가 로랑스가 고삐를 쥐었다고 믿게 만든다. 사실 그렇다. 뱅상이 경마에서 번 돈으로 술을 마시고 여자를 만나는 일도 잠깐의 일탈처럼 여겨지니까. 뱅상이 집을 나가려 하자 로랑스는 자신의 진심을 토해낸다. 경제적인 지원이 아니면 뱅상이 자신을 떠날까 두려웠다고. 


나는 로랑스가 좀 지나치게 나를 사랑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 지나친 감정이 그녀에게 지옥 같은 생활과 맞먹을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쨌든 그녀는 어리석고, 경멸한 만하고, 심술궂고, 이기적이고, 맹목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막연하게나마 그녀가 가진 어떤 그 무엇, 내가 알지 못했고, 결코 알게 되지 못할 것이며, 또 아쉬워하면서도 내가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그 어떤 것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친 듯한 사랑, 바로 그것이었을까? (301~302쪽)


독자인 나는 뱅상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 로랑스가 연기를 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 예나 지금이나 이토록 어렵고 힘든 게 사랑이다. 어쩌면 그건 로랑스가 뱅상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식인지도 모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결말로 로랑스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했으니까. 사강은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한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로랑스와 뱅상의 사랑은 어긋나버렸고 잘못된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뱅상의 전부를 소유하고자 했던 로랑스의 사랑을 판단할 수 있는 이는 오직 뱅상뿐이다. 그래서 사랑은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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