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라이프 - 빈민가의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하킴 올루세이.조슈아 호위츠 지음, 지웅배 옮김 / 까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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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을 발견하는 일은 중요하다. 스스로의 재능을 발견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건 극소수다. 한 사람의 재능은 주변 사람이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부모나 선생님 말이다.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그 재능을 뒷받침해 줄 여력이 충분하다면 재능은 아름답게 꽃피울 것이다. 최근에 가장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처럼. 천체물리학자 하킴 올루세이의 자전적 에세이 『퀀텀 라이프』를 읽으면서 그를 응원하고 후원하는 이들이 그의 생애 조금 일찍 등장했더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는 잘 성장했고 현재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활동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말이다.


때때로 한 사람의 과거를 듣는 일은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 현재가 아닌 우리가 알 수 없는 과거에는 놀라운 일들로 채워지기도 하니까. 하킴 올루세이의 유년 시절이 그러했다. 아니, 유년 시절뿐 아니라 대학에 가고 대학원을 준비하고 연구자의 길을 걷는 순간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했다. 아빠를 떠나 엄마와 누나 브리짓과 함께 시작된 삶의 기억. 빈민가를 전전하며 수없이 많은 전학을 하면서 생활했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엄마에게는 돌봄을 받을 수 없었고 누나 브리짓이 유일한 보호자였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엄마에게도 삶을 버거움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흑인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을지도 모른다. 1970년대 미국에서 흑인에게 무시와 냉대가 일상이었으니까.


어려서부터 하킴 올루세이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뭐든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을 즐겼다. 요즘 같으면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라고 칭찬했겠지만 열이 심하게 나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브리짓에게 아들을 맡긴 엄마에겐 골치 덩어리였다. 몇 년 후에 다시 아빠를 만나 아빠와 생활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교를 가는 일보다는 집안의 농장 일을 돌보고 마리화나를 파는 일을 돕는 게 더 중요했다. 그를 안전하게 보호할 울타리는 없었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책에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뿌리』와 백과사전을 읽으면서 호기심은 더욱 팽창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만났을 때 폭발했다. 그러나 불안정한 일상은 그를 일탈로 이끌었다. 대마초를 피우는 흑인 학생은 훈육의 대상이었고 그에게 주어진 건 튜바였다. 역시 음악은 아름답고 훌륭한 치유를 선물한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그때 튜바가 아닌 엄격한 훈육을 받았더라면 현재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과학에는 더욱 열심히 했던 하킴 올루세이는 대학교에서 열리는 과학전람회에 참여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분해와 조립을 좋아했던 그에게 컴퓨터는 새로운 세상이었지만 집에 IBM 컴퓨터를 가져갈 수 있게 허락한다. 그는 결국 과학전람회에서 대상을 탔다. 백인과 흑인이 모여 있는 그곳에서 그가 해낸 것이다. 그리고 장학금과 대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해군 입대를 제안받는다. 드디어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세계로의 집인이라는 생각에 나는 덩달아 흥분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어려서부터 예민했던 피부염이 아토피였다는 사실과 함께 군에서 명예 제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한 친구가 대학을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투갈루 대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그는 수업에도 학생들에게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제 나는 조금씩 조바심이 생겼다. 투갈루를 자퇴한 그가 언제 하킴 올루세이가 마약 흡입과 판매에서 벗어나 오롯이 물리학에만 정진할 수 있을지 말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몰랐겠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스탠퍼드 대학교 물리학과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그를 향한 혐오의 시선은 여전했다. 그의 실력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그때마다 그는 좌절했다. 그때 그를 격려하고 지지한 사람은 그의 스승 ‘아서’ 교수와 아내 제시카였다. 마약 중독자였던 그는 치료를 시작했다. 아서 교수가 있었기에 그는 천체물리학자로 남을 수 있었다.


“인생이 쉽게 풀릴 거라고 절대 생각하지 마라. 물리학은 원래 어려운 거야. 어쩌면 학과 교수들 몇몇을 납득시키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다. 그러나 자네는 분명 똑똑한 학생이야 그래서 자네를 우리 연구진에 참여시키고 싶었고, 나는 자네를 믿네. 그동안의 일을 잘 잊고 극복해낼 거라고 믿는다.” (334쪽)


아서 교수 역시 하킴 올루세이와 같았다. 흑인이었기에 대학에서는 그의 연구나 업적을 흔쾌히 인정하지 않았다. 아서 교수는 스스로 자신을 증명했고 하킴 올루세이도 그럴 수 있다고 확신했다. 아서 교수는 하킴 올루세이를 어떻게든 내보내려는 대학교를 상대할 방법을 알려주었다. 자신을 지지해 주는 이가 있다는 걸 확인한 하킴 올루세이는 확신한 목표를 향해 나갔다. 아서 교수의 연구에 참여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 연구가 아서 교수의 마지막이 될 거라는 걸 알았을 때 하킴 올루세이는 세상을 잃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빈민가의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다. 인생에서 우연히 얻어지는 건 없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더라도 빛을 낼 수 있도록 그것을 꺼내 연마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킴 올로세이의 재능도 그러했다. 그것을 알아봐 준 아서 교수와 고난과 역경을 함께 이겨내고 곁을 지켜준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전하고 싶은 것도 다르지 않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지지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는 희망을 말한다. 그가 미국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건너간 이유였다. 역사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그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기 위함이다.


아이들이 꿈을 꾸는 한 한계는 없다. 수천억 조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우리 우주는 매우 광활하다. 그러나 무한하지는 않다. 유한하다. 내가 관측한 것 중에 무한에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희망이다. 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학생들의 얼굴에서 그 무한한 희망을 보았다. (418쪽)


이 책이 또 다른 하킴 올로세이와 만난다면 더 크고 위대한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눈부신 조각이 될 것이다. 천체물리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과 전공을 하는 이에게도 훌륭한 교재뿐 아니라 동기부여를 안겨줄게 틀림없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감동은 말할 것도 없이 말이다.


나는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분명 일어날 수 있는 범주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물리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양자역학에는 양자 터널링 quantum tunneling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다. 벽을 뚫고 통과하려고 해도 매번 벽으로 가로막힌다. 벽을 통과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낮다. 그러나 분명 아주 희박하게나마 벽을 통과할 확률이 아주 조금은 있다. 이 희박한 확률로 벽을 뚫고 통과하는 현상을 양자 터널링이라고 한다. 나의 삶은 마치 새로운 벽을 마주해서 반대 방향으로 강하게 튕겨나가면서도, 결국은 벽을 통과하는 데에 성공하는 진동 패턴과도 같았다. 나 자신이 바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삶은 이 양자역학의 원리에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 (프롤로그,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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