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배명훈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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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이해하려고 하면 끝도 없이 어려워진다. 단순하게 재밌다 하고 여기는 게 중요할 때도 있다. 나에게는 SF 장르의 소설이 그러하다. 도무지 가상세계를 상상할 수도 없고 등장하는 용어도 모르겠지만 소설 속 인물이 가고자 하는게 어딘지 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배명훈의 SF 소설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도 얼핏 제목만으로도 우주와 탄도학이라는 단어때문에 무슨 말일까 싶을 거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냥 우리가 사는 세상과 비슷한 이야기로 지구가 아닌 우주섬 사비일 뿐. 화성 이주가 활발하지만 모두 화성에 정착할 수 없는 이들은 스페이스 콜로니에 산다는 정도다.


스페이스 콜로니 사비는 작은 도시였다. 우주선치고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구조물이지만 도시라고 생각하면 그냥 시골에 있는 중소 도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14쪽)


소설의 배경인 사비엔 시대가 바뀌어도 존재하는 금수저 ‘이초록’의 고모가 있다. 초록이 가려고 했던 곳은 사비가 아니지만 어쨌든 그곳에서 정착한 고모 덕에 초록은 주소국의 국장으로 발령을 받는다. 하는 일이라곤 없는데 고모 ‘이강녕’이 초록을 그곳에 보낸 건 정보를 얻기 위함이다. 주소국에서 유일하게 일을 하는 ‘수미야’를 통해 들은 동심원의 흔적. 어느 날 갑자기 사비 곳곳에 동심원과 근처에서 발견된 총알의 흔적. 누군가 동심원을 과녁 삼아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강녕이 기다렸던 정보도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까 스나이퍼의 등장 말이다. 이강녕은 사비의 주요 인물 ‘장고요’를 돕는데 그가 킬러의 목표라는 걸 알았다. 스나이퍼의 존재를 알았으니 그가 실패하도록 계획을 세우면 된다. 사비는 지구와 다르게 그들만의 물리학이 있으니 어느 지점에서 스나이퍼가 공격을 할지 찾아내 인공 중력의 속도를 변경하면 총알이 목표점이 아닌 휘어지고 장고요를 지킬 수 있다. 현재 사비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장고요가 반드시 필요했다.


초록의 관심은 고모와 다르게 스나이퍼였다. 수미야와 인공지능 ‘윤수정’을 도움을 받아 스나이퍼 ‘한먼지’의 집을 찾아간다. 한먼지는 이미 그곳을 떠났고 초록은 그녀가 남긴 수첩을 살핀다. 사비 곳곳을 다니며 연습을 한 한먼지만큼 사비를 잘 아는 이도 없었다. 그러니 어느 장소에서 장고요를 습격할지 모두 알게 되었다. 장고요가 이동할 때, 중대 선언을 발표할 연단을 놀릴 것이다. 사비의 탄도학을 이길 수 없었지만 한먼지의 실력은 대단했다. 모든 걸 곁에서 지켜본 수미야의 감탄은 당연했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후련하고 시원한 기분을 느꼈다. 수미야처럼 한먼지를 응원하고 있었다고 할까.


‘먼지 님, 계속해요! 쓸데없는 고민은 제발 그만두시고요! 임무니 꿈이니 그게 뭐가 중요해요? 보이지도 않는 데서 춤추며 날아온 총알이 저렇게 정확하게 한군데에 꽂히는데!’ (166쪽)


장고요는 살아서 사비의 모든 종류의 시민을 위한 통일정부를 선언했고 한먼지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한 발은 악마의 몫이라는 엄마의 말에 갇혀 있던 한먼지를 구한 건 초록이었다. 그는 먼지에게 마지막 한 발도 쏴 버리고 악마가 되라고. 악마의 두려움에 떨지 말고 스스로 악마가 되면 어떠냐고 말이다. 한먼지는 나를 지배하는 악마가 되기로 한다.


한먼지의 개획이 성공했다면 사비는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장고요를 대신해 사비를 지배하려고 다툼이 일어나고 평화는 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결말이 SF 적으로 흥미로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명훈은 심각하고 무거움보다는 가볍고 유쾌한 쪽을 택했다. 시대와 공간이 변해도 삶은 이어지고 아름다운 연대로 모두가 공존하는 세상을 바랐다고 할까.


잘 익은 웃음은 금방 번져나가서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도 알 수 없게 옥상을 가득 채워버렸다. 그때 갑자기 해가 졌다. 웃음이 뚝 끊어지고, 침묵이 커튼처럼 옥상을 감쌌다. 옆 건물에서 뭐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욕설이 울려 퍼진 뒤에야 넷은 키득키득 웃음을 되찾았다. (174쪽)


수미야, 한먼지, 이초록, 윤수정이 모인 옥상을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지구와 다르게 하늘을 볼 수 없는 사비지만 왠지 그곳에서는 멋진 하늘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음 세대가 꿈꾸고 살아갈 미래의 어느 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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