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새소설 11
류현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대 간의 갈등은 봉합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사회 어디에서나 가장 힘든 문제가 되었다. 경험을 토대로 건네는 조언은 잔소리가 되었고 자신의 상황이 제일 어렵고 중요할 뿐이다. 그건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극복하기 힘든 관계 일지도 모른다.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다. 가족이라서 그렇다는 근본적인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내용을 예상하게 만드는 류현재의 소설 속 가족도 그러하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입에 든 찹쌀떡 때문에 숨이 막혀 죽어간다. 그 곁에 아버지도 칼에 찔려 죽음을 맞는다. 부부는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난다. 부족할 것 없는 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과연 이런 참혹한 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 뉴스에 등장하는 존속살해인 것일까. 제목을 떠올리면 그게 정답일 것 같은데. 이 비극의 시작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아버지가 모임에 나가고 어머니 혼자 산에 오르다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다. 요양원이 아닌 집에서 지내기를 원하는 엄마. 아버지 혼자 엄마를 감당하기는 어렵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부부에게는 아들 둘 딸 둘 자녀가 있다. 큰 아들은 의사, 큰 딸은 선생님, 이혼해 아들을 키우며 어린이집 교사를 하는 둘째 딸, 부모와 함께 살면서 공무원 공부를 하는 막내. 이미 익숙한 전개로 느껴지는 건 나뿐일까. 둘째 딸이 아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와 부모를 모신다.


돌봄은 어렵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자신의 입장과 처지만 생각할 뿐이다. 돌봄을 받는 부모는 둘째 딸이 마음에 차지 않고 딸은 그런 부모가 서운하다. 모든 걸 자신에 맡긴 형제에게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둘째 딸을 시작으로 가족 가족 저마다의 속마음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가족에게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말이다.


둘째 김은희는 일을 그만두고 엄마를 간호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잘한 선택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요구 조건과 잔소리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다.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고 그건 술과 동생 친구인 세탁소 아들 광수였다. 의사로 성공한 큰아들 김현창은 부모가 환자처럼 여겨진다. 어머니가 위급할 때마다 자신을 찾는 아버지와 가족들이 부담스럽고 힘들다. 가족으로부터 도피처로 결혼을 선택한 큰 딸 김인경은 일을 하면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겨우 끝났다고 여겼는데 엄마가 쓰러진 것이다. 둘째가 모시기로 했으니 경제적으로 보태면 된다고 여겼다. 막내 김현기는 자신을 향한 기대와 염려가 불편하다.


어쩌면 부모의 죽음은 소설 속 모두가 바라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가족의 짐이 되기 싫었고 아들의 교통사고로 인해 막대한 합의금이 필요했던 큰 딸은 부모의 집을 둘째에게 줄 수만은 없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언니와 싸우고 집을 뛰쳐나간 둘째 딸은 가족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오는 아버지와 형제들 때문에 막내는 일터에서 집중할 수 없었다. 둘째 딸의 말을 한 번쯤 들어보고 한 번쯤 해 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나한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게 가족이에요. 가장 질진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이 가족이라고요!” (194쪽)


범인이 누구일까 찾아가는 과정은 흥미롭지만 헛헛함과 쓸쓸함을 감출 수 없다. 가족이라는 게 무엇일까. 부모는 무엇이며 자식은 무엇인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늙음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할까.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앉은 명절이나 가족 행사에서 말다툼이 싸움으로 이어지는 건 그만큼 소통이 없었던 때문일까. 사느라 자주 만나지 못한 탓일까.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니 막내 김현기의 말처럼 핏줄이라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핏줄이라는 말은 사기다. 진짜 피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은데, 연결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니까. 혹시라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핏줄이 연결돼 있다면 그건 아래로만 향해 있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핏줄이 이어져 있는데, 자식의 핏줄은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자식을 향해서만 뻗어있을 테니까. 그리고 자식을 향한 핏줄이 연결되는 순간, 부모 쪽에서 온 핏줄은 막혀버린다. 거추장스러운 넝쿨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161쪽)


부모 없이 존재하는 이는 없다. 설령 그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지라도. 끝까지 참담함을 걷어내지 못하는 소설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순간 울컥하게 된다. 이제 내게 부모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서 떠난 형제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앞으로 고아로 살아갈 내 삶이 서글퍼서 그런지도 모른다.


부모가 늙고 병들게 되면 어느 가족이나 거처야 하는 고민과 선택의 순간들, 길고 긴 간병의 세월 동안 겪게 되는 고립감과 외로움. 다른 형제,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 죄책감, 분노, 가족들이란 말만 들어도 치밀어 오르는 피곤과 싫증에 대하여. 당신만 이기적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당신네 가족만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따듯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의 말 중에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어리랏다 2022-07-18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