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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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소개하는 일은 좀 어렵다. 어떤 시든 독자의 마음에 닿는 부분과 감동을 주는 부분이 다르니까. 저마다의 감성을 하나로 통일할 수 없고 그건 통일해서도 안 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시집을 읽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 시집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은 뭐랄까 어쩔 수 없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 박노해 시인의 12년 만에 선보인 시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할 수도 있다. ‘박노해’란 이름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존재일 것이고 누군가는 하나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를 모르는 이들도 존재할 터, 그런 의미로 이 시집은 그저 시로 다가갈 것이다.


그의 시는 평온함을 바라고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자신을 비롯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평온에 이르기를 바라는 기도와 다르지 않다. 삶이라는 인생길을 먼저 걷는 이가 들려줄 수 있는 담백하면서도 담담한 이야기다. 어쩌면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닮았을지도 모르는 이런 시에 눈과 마음이 머문다. 치열하게 살아가느라 정작 그 순간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지 모르는 모든 젊음에게 고하는 시처럼 들린다.


젊은 날의 고결한 이상과

젊은 날의 탐험의 열정과

젊은 날의 투쟁과 상처가

얼마나 위대한 걸 심어나가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오늘의 젊음은

젊은 육체에서 추방당해

밤이 오면 그의 꿈길에 헤매다

그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으니 (「젊음은 좋은 것이다」, 일부)


누구나 사는 일은 고단하고 고단하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지키려고 애쓰는 마음도 같다. 그게 정의고 가치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양심과 진리를 향한 몸부림이라고 말하기도 할 것이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어겼을 때 그걸 아는 이는 오직 자신뿐이기에 이런 시는 너는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묻는 것만 같다. 무엇을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나아기만 하다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살다 보면 위선할 때가 있죠

권력과 다수 앞에 그럴 때가 있죠

그래도 우리 정직하기로 해요

나 자신에게 진실하기로 해요


나 지금 위선하고 있다

나 지금 타협하고 있다

비겁함과 두려움에 끌려가고 있다


홀로 울며 직시하고

부끄러운 치욕을 삼키며

절대로 익숙해지지 마요

절대로 길들여지지 마요 (「살다 보면 그래요」, 일부)


돌아보면 모든 게 부질없고 모든 게 아쉬운 게 우리네 삶이다. 수많은 관계에 허덕이고 잘못을 되뇌며 후회를 반복한다. 무엇이 중요하지도 모르고 중심을 잃고 살아간다. 그러다 간절한 무언가를 갈구할 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신을 찾는다. 우리가 바라는 건 정말 무엇일까. 욕망을 내던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인의 노래처럼 우리가 구할 것도 시와 같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늘이여 저에게

최대한의 것을 허락하지 마시고

최소한의 것만을 허락하소서


최소한의 물질에서

최대한의 기쁨을 누리는 능력을


최소한의 지식에서

최대한의 지혜를 구하는 능력을


최소한의 관계에서

최대한의 우애를 가꾸는 능력을


그리하여 하늘이여

저에게 적은 소유로 기품 있는 삶 속에

오로지 최대한의 사랑만을 허락하소서 (「최소한의 것만을」, 전문)


시인의 생각과 삶이 하나하나 쌓여 301편의 시로 남았다. 그 모든 시가 우리에게 말한다. 삶을 용서하라고, 더 집중하라고, 마음을 다스리라고, 사랑이 되라고, 사랑으로 살아가라고 말이다. 어떤 시는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만 같고, 어떤 시는 시인의 마음이 이랬을까 혼자 상상하게 만든다. 시를 읽으며 그가 지나온 굴곡진 삶을 생각하고 그가 바라는 삶이 무엇인가 조금 알 것도 같다.


짐 보따리는 단단히 묶어라

매듭은 너무 꽉 묶지 말아라

풀 때를 생각해 날캉히 묶어라


사람살이가 그런 거다


다신 안 볼 것처럼

인연 줄 모질게 자르지 마라

언제 어디서 마주할지 누가 알 것이냐


인생살이가 그런 거다


그때그때야 일이 목숨 같다지만

지나고 나면 일은 끝이 없는 일들이고

결국은 사람, 사람과 사랑만 남은 것이니 (「매듭을 묶으며」, 전문)


모든 걸 놓아야 할 때가 있다고 깨닫는 순간 삶이 조금 편안해질까 싶다가도 여전히 움켜진 것들이 많다는 걸 발견한다. 주어진 것들을 노래할 수 있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언제 깨우치게 될까. 영영 알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나는 그래서 이렇게 시를 읽으며 잠시나마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는지도 모른다.


일상은 일상으로 두라

일상을 이벤트로 만들지 말라

일상이 일상으로 흐를 때

여정의 놀라움이 찾아오리니


결여는 결여대로 두라

결여를 억지로 채우지 마라

결여는 결여된 채 품어갈 때

사무치는 그 마음에서 꽃이 피리니


상처는 상처대로 두라

상처를 감추지도 내세우지도 마라

상처가 상처대로 아파올 때

상처 속의 숨은 빛이 길이 되리니 (「그대로 두라」, 전문)


세상의 끝에

오지가 있다


아니다


오지의 끝에

세상이 있다


오지가 사라지면

세상 또한 무너진다


내 안의 시원의 오지가 사라지면

이 땅의 순수한 이들이 무너지면 (「세상의 끝에」, 전문)


시를 읽으면 조금 단단해지는 것 같다. 얼마나 물렀는지 차마 설명할 수 없다.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의 물기가 조금씩 사라지고 형체를 알 수 없던 마음이 무언가 만들어내는 것 같다고 할까. 박노해의 시를 천천히 읽고 조금 멈추고 다시 읽어 나가는 시간이 그러하다. 대단한 결심을 한 것처럼 주먹을 쥐고 자세를 바르게 고친다. 뿌듯하고 시원한 마음으로 채워진다.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을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게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네가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너의 하늘을 보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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