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 2022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최설 지음 / 마시멜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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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는 듯 팬데믹의 시대를 살아간다. 누구나 한 번은 통과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정도다. 외부와의 단절과 자가격리가 끝나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누군가는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누군가는 심한 후유증을 앓는다. 병은 공평하지 않아서 특정한 누군가를 찾아온다.


치료가 가능한 병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의학은 과거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으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병은 너무 많고 그로 인해 생을 마감하는 이도 적지 않다. 과거에는 더욱 그러했다. 2022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최설의 장편소설『방학』은 과거 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간 병을 소재로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 건수는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가 아닌 아빠가 있는 병원에 간다. 병문안이 아닌 아빠와 같은 병으로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한 것이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병원에 입원한 어떤 환자는 1차 약을 일정 기간 복용하면 바로 퇴원하지만 어떤 환자는 2차 약을 먹으며 지낸다. 건수와 아빠는 어떤 약도 듣지 않는 상태로 심각한 상황이다. 같은 병실을 쓰던 환자의 죽음을 마주하고 끝내 아빠도 건수의 곁을 떠난다.


소설의 제목인 방학은 입원을 말하는 것으로 건수의 방학은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다.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약을 먹고 검사를 받고 병원을 벗어나지 않는 지루한 일상이 반복된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경험하고 아빠의 투병 생활을 지켜본 탓일까 건수에게는 어떤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 소설을 쓰는 엄마가 등단을 하기를 바랄 뿐이다.


소설은 병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건수의 동선에 따라 진행된다. 병실, 간호사실, 매점, 자판기, 성당, 본관, 별관, 지하의 장례식장. 건수가 만나는 이들도 제한적이다. 간호사, 같은 병실의 환자, 신부, 수녀, 매점 할머니, 그리고 얼마 전에 엄마를 떠나보낸 강희. 성당에 간 건 간절한 기도가 있어서는 아니다. 피아노가 있어서다. 성당에서 강희의 간절함을 보게 된 건 우연이었다. 건수는 그런 강희의 모습을 볼 때마다 모른 척했다.


새로운 치료제가 나오고 환자들은 술렁인다. 약 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다면 모를까. 건수는 기대 따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건수에게 왔다. 건수는 몰래 신약의 반을 강희에게 준다. 생과 사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걸 강희에게 건네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건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강희의 말처럼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 텐데.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른다는 거야. 너무 빠르게 흐르니까. 가슴 안에 들어 있는 것 중에선 폐 말고는 신경을 잘 못 쓰게 돼. 그러니 자기 마음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잘 느끼지 못하는 거지.” (213쪽)


2년 140일까지 이어진 방학 동안 건수가 경험한 감정은 성장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건수는 이별, 상실, 고통을 지나쳐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건수에게는 방학이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우울의 늪으로 상상하면 곤란하다. 건수가 냉소적이지만 비관적인 건 아니니까.


길고 지루한 투병생활을 다루고 있지만 소설에서 깊은 슬픔과 절망의 분위기를 찾기는 어렵다. 병원 생활에 익숙해진 환자들의 특유한 유머와 그들만의 단단한 연대가 돋보일 지경이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학’이라는 제목은 훌륭하다. 우리 삶에서 때로 잠깐의 방학은 필요하니까. 강제적 방학일지라도 반드시 개학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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